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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최우수
“택배는 배송중 마음의 병은 치료중”이호권 택배기사로 10년 남짓 일했던 지금은 쉬고 있는 택배기사의 이야기입니다.매일 백건 이상, 많을 때는 수백 건의 택배를 배송하면서 수많은 고객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택배기사가 감정적으로 힘 든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의 병이 생겼던 경험담을 적었습니다.디스크라는 육체의 병과 함께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은 택배기사의 이야기로,택배기사는 육체노동자이면서 감정노동자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위잉~ 진동이 울리고 스마트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 다가 음성사서함을 넘어가기 바로 전에 수신 버튼을 터치했다. 카센터에서 온 전화였다. 점검을 맡긴 차의 검사가 끝났다고 했다. 등록되지 않은 낯선 전화가 울릴 때, 가슴이 덜컥하고 받기 망 설여지는 것은 10여 년 가까이 택배 일을 하고 내가 얻은 직업병이다. 동네 선배형의 일을 돕다가 화물차 지입으로 시작하게 된 택배 일을 10년 가까이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택배 물량도 급격히 증가했고 일거리도 끊 이지 않다 보니 택배기사로 꽤 오래 일하게 되었다. 친절기사로도 뽑혀봤고, 지역 물량 탑도 찍 어봤지만 이 일이 나에게 허리디스크와 함께 마음의 병 까지 만들어 줄줄은 몰랐다. 택배기사는 택배를 배달하는 육체노동자인 동시에 매 일 적게는 백여 명, 택배 물량이 많을 때는 수백 명의 고객과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무거운 택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카트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상자들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육체노동의 영역이다. 택배를 받는 고객들과 만나서 택배를 전달하는 그때는 감정노동자가 되어서 고객들과 상대해 야한다. 일선에서 고객과 바로 얼굴을 대하는 택배기사이기에 택배 물건에 대한 클레임은 잘못 이 있든 없든 1차적으로 바로 우리 택배기사들이 받게 된다. 비난과 욕설이 섞인 전화를 매일 받 다보면 차츰 낯선 전화번호가 뜰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몇 가 지 사건들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택배를 시작하고 1년 남짓 된 시기였다. 아직 예비군이 끝나지 않아서 향방작계라는 6시간짜 리 교육을 받아야했다. 하필 예비군 일정에 물량이 몰려서 몇 번을 연기한 끝에 11월에 마지막 교육 일정만 남아 있었다. 그것마저 참석하지 못하면 당장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연말 시즌 전이었고, 김치 폭탄이 터지는 김장철을 피한 시기여서 하루 물량이 150건 정도 되었 다. 50건은 옆 동네를 담당하는 기사분에게 부탁을 드리고 100건 중에 냉동식품 같은 것은 밤늦 게라도 훈련이 끝나면 배송하고, 남은 건 다음날 배송하려고 마음먹었다. 고객들에게는 이런 상 황을 설명하는 긴 문자를 단체로 발송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문자가 쏟아졌다. 훈련 잘 받으라는 응원의 문자도 있었지만 배송이 늦은 데 대한 보상을 하라는 문자부터 오늘 안에 배송을 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문자, 그리고 차 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욕을 적어서 보낸 문자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하나 한숨이 나왔다. 훈련 중에는 핸드폰을 꺼놨다가 끝난 후에 켜니 또 문자가 쏟아 졌다. 그날은 새벽까지 배송을 해야 했다. 마지막 택배를 배송하고 트럭에 앉았는데 눈물이 흘렀다. 택배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김장철은 김치 택배 때문에 택배기사들의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김치를 사 먹는 일이 일상 적이라서 평소에도 김치 택배를 배송할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평소처럼 한두 개가 아니라 김장철에는 매일 여러 상자를 배송하게 된다. 김치 전문 업체들은 새지 않게 두꺼운 비닐로 포장하고 케이블 타이로 꽉 조여서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과 함께 배송한다. 김치의 발효 를 늦춰서 봉투가 부푸는 것도 방지되고 김칫 국물도 새지 않는다. 일반 고객들은 보통 김장 비닐봉투 한 겹에 김치를 담아서 종이박스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추운 김장철이지만 김치가 발효되면서 가스가 발생해서 비닐이 부풀고 그러다 보면 찢어지거나 터지고 김칫국물로 다른 택배까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김장철이면 택배기사들은 김장 비닐봉투 여러 장을 차에 비치해둔다. 언제 어디서 김치 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12월 중순, 남쪽지방도 김장을 끝낼 때쯤이었다. 한동안 이른 추위 때문에 움츠러들었는 데 그날은 날이 풀려 봄날처럼 따뜻했다. 배송물량도 많았고, 길에 차도 많아서 배송이 지체 되었고, 따뜻한 날씨에 트럭 안에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배송을 위 해 문을 열었는데 시큼한 김치 냄새가 쫘악 퍼졌다. 다른 택배에까지 물이 들어버리면 망한 다는 생각에 급하게 폭탄을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종이박스에 포장된 김치였다. 상비하고 있던 김장봉투에 얼른 담고 물티슈와 걸레로 다른 택배에 묻은 김칫 국물을 닦아냈다. 다행 히 배송 막바지여서 남은 택배가 얼마 없었고 김치박스 근처에 다른 택배가 몇 개 없어서 오 염된 부분이 적었다. 김치를 배송받은 고객은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했다. 시골의 어머니께서 연로하셔서 대충 포 장하셔서 택배기사님을 힘들게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께서 보낸 김치가 새서 속상할 텐데 이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내가 더욱 미안해졌다. 김칫 국물이 묻은 박스를 받은 다른 고 객분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하니 다들 이해해주셨다. 물건에 이상이 없으니 괜찮다고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배달한 집에서 문제가 생겼다. 김칫 국물을 닦는다고 닦았는데도 박스에 스며 들었던 물기를 다 닦지는 못했는지 박스에 있던 김칫 국물이 전실 바닥에 묻었다. 택배 고객 은 걸레를 바닥에 던지더니 다 닦아 놓고 가라고 했다. 처음 당하는 상황이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걸레를 집어 들었다. 전실 바닥의 김칫 국물을 다 닦고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박스를 가져다 버리라고 했다. 겉박 스는 김칫 국물에 오염되었지만 다행히 이중포장으로 안에 있던 택배물품은 멀쩡한 것 같으 니 냄새나는 겉박스는 나보고 가져다 버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항의하기도 전에 아저 씨 잘못이니 아저씨가 가져다 버려야 한다며 중문을 쾅 닫아버렸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 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박스를 주섬주섬 챙겨서 나왔다. 12월 밤인데도 춥지 않 았는데 마음은 참 추운 날이었다. 그 외에도 감정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은 많았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유수함에 택배 를 넣으라고 했으면서 새벽 1시에 전화해서 택배를 어디에 두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잠 결에 받아서 정신을 차리고 유수함을 찾아보시라 했더니 왜 유수함에 넣었냐며 화를 냈다. 그 러면서 “저러니 택배나 배달하지.”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는 사람 정도는 웃어넘기게 되었다. 분명히 택배를 받았으면서 택배를 받지 못했다고 나를 도둑놈 취급하던 사람도 있었다. 온 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책들은 도서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기사들이 배송한다. 그런데 접 수 시간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일반 배송기사들이 배송할 때도 있다. 바로 그런 케이스로 책 을 배송했을 때였다. 분명히 정확히 배송했고 수취인이 있었는데 받지 않았다며 나에게 계 속 클레임을 걸었다. 난 배송했으니 온라인 서점과 해결하라고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 에게 전화해서 자기네 식구는 받은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똥이 더러워 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마음으로 무슨 책인지 물어서 배송하는 길에 서점에 들러 한 권 사다가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서 경비실에 부탁해서 CCTV를 보여 달라 고 했다. 거기는 내가 분명히 배송하러 올라가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손에는 택배가 들려있었고, 내려올 때는 없는 것까지 다 있었다. 억울함을 풀고 싶었지만 해당 고객의 집을 찾아가 거나 하는 일은 불법적인 일이 될 수 있다며 주변에서 말렸다. 난 도둑의 누명을 쓰고도 억울 함을 풀 수 없었다. 명절 때면 물량이 밀려서 신선식품 배송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핸드폰을 통해서 욕설이 날아든다. 어린이날이면 자녀들 선물이 왜 이리 배송이 안 되냐며 또 격앙된 목소리로 욕하 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배송 동선이 있고 순서가 있는데 무조건 자기가 지금 당장 써야하니 자기 집부터 오라고 강짜를 부리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객들을 대하면서 가슴에 병이 생기고 낯선 번호로 전화만 와도 전화 받기가 무서워졌다. 물론 좋은 고객도 많다.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두는 분들. 컵은 그냥 마시 기 힘드니 캔이나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시원하게 해서 주는 분들. 착불인데 자신이 집에 없 어서 미안하다며 손편지와 함께 착불비를 문에 붙여놓고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문자를 보 내는 분들. 겨울이면 고생하신다며 핫팩을 쥐어주시는 분들.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분들도 많다. 좋은 고객분들 덕에 힘이 나다가도 화내고 욕설을 하는 고객들을 보면 힘이 또 빠지고 만다. 100명의 좋은 고객이 주는 기운보다 한 명의 욕설이 더 큰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 한 두 번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소주 한 잔 하고 털어버릴 수도 있지만 매일 계속되는 일상 에서 항상 욕을 먹고 때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게 되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또 상처가 나 서 결국 덧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10년간 쌓여온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 때문에 잠시 일을 쉬고 지금은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택배를 기다릴 때의 애타는 심정을 택배기사들도 잘 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배달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떤 택배기사도 고객에게 한 번 당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택배 를 늦게 배송하거나 일부러 박스를 밟고 찢는 짓은 하지 않는다. 모든 고객이 소중한 택배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 욕 문자와 비인간적인 대접은 한 가장을, 한 노동자를, 그리고 한 사람을 얼마나 힘들 고 아프게 하는지 알아주었으면 한다. 전자제품 AS센터에서 일하는 친구 녀석도 나와 비슷한 경우다. 휴대폰 AS를 하는 녀석은 항상 웃으며 고객을 대하지만 친구들끼리 만나면 잘 웃지 못한다. 고객을 응대할 때 담배 냄 새가 날까봐 담배도 끊을 정도였던 녀석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서 술이 늘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라며 강짜를 부리는 고객을 매일 상대하면서 하루하루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있다. 택배기사도, AS기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도 항상 고객입장에서 생각하며 최대한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일명 ‘진상’이라고 불리는 고객 들이 좀 덜하지 않을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 앞에 두고 가서 죄송합니다.” “벨을 누르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늘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하는 나는 죄송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생각한 적 도 있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우수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아빠입니다.”고창균 어릴 때부터 저의 꿈은 교사였습니다.그런데 언젠가부터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그리고 예전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선생님을 우러러보았지만,지금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글은 학교폭력 담당교사로 근무하며 경험했던 감정노동에 대해 썼습니다.학부모의 폭언과 항의에 시달렸지만 어디에다가도 항변을 하지 못한 채, 도리어 상급기관 감사까지 받았던 저의 아픈 경험입니다.그동안 ‘남의 집 귀한 자식을 학교에 보냈으면~’으로 시작하는 학부모의 폭언과 항의가 많았습니다.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아빠입니다.” “그건 그냥 수포가 아니고, 한포진이라는 피부 질환이에요. 몸에 면역성이 저하되었거나, 극심 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지요. 아마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일단 스테로이드제를 먹으면서 연고 처방을 좀 해보도록 하죠.” 그렇게 시작된 한포진과의 인연은 3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이제는 수포를 억지로 터트리지 않 을 정도로 친구처럼 익숙해졌다. 3년 전 그때는 학교에서 학교폭력 담당 교사로 일할 때로 온갖 민원과 항의에 시달릴 때였는데, 그 사건이 발생한 초여름부터 한 겨울이 될 때까지 극심한 스트 레스를 겪으면서 한포진과 친구가 된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은 그 양상도 다양하고 원인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처리 과정도 매우 복잡하다. 특히 학생들과의 싸움이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확 대되었을 경우 상황은 굉장히 심각해진다. 그 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건이 굉장히 복잡하게 꼬여가기 시작하였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여 이런저런 절차를 진행하고 있던 오후에 피해 학생 아버지가 굉장히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피해학생 학부모의 입장에서 장시간 동안 항의를 하였지만, 담당교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안을 처리해야 했으 므로 현재 조사 중인 사건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이야기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가해자 편을 드는 겁니까?” 이제 사안 조사를 시작한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기에 중립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는 데, 다짜고짜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냐고 또 다른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전화상으로 목소 리만 들어도 극도로 흥분한 상황임이 느껴질 정도로 시종일관 공격적인 말투로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어야 했다. 매우 불쾌했지만 내 감정을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다행인지 다음 시간 종이 쳤고 전화를 담당 부장 선생님께로 넘기고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하는 내내 그 학부모의 항의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고, 그 수업을 굉장히 망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기 위해 교무실로 올라왔는데, 오후의 그 학 부모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교무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선생이면 이래도 되는 거야?” “네?” “선생이면 너 맘대로 전화를 마음대로 끊어도 되는 거냐고.” 알고 보니 오후에 나와 1시간가량 통화를 하고도 화가 삭혀지지 않은 학부모가 부장 선생님을 붙잡고 또 1시간을 넘게 통화를 했던 것이다. 흥분한 상태에서 나에게 했던 얘기를 포함해서 동 일한 얘기만 반복하는 학부모의 일방적 이야기에 부장 선생님은 더 할 얘기가 없으면 통화를 종 료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전달하였고, 서로 합의하에 통화를 종료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학부모는 그 길로 학교를 찾아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 생활을 10년 가까이했기에 웬만한 일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때였는데, 면전에 대고 ‘선생’ 이라는 호칭과 함께 반말로 쏘아붙이는 항의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록 한 글자 차 이이지만 ‘님’자를 떼고 ‘선생’이라고만 불리는 것에 선생님이라는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 렸다. 그리고 교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부장 선생님은 학부모의 항의에 더 마음이 상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답답해하면서도 상당히 절제된 단어들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학교에 들어앉아만 있으면 선생이야? 어떻게 선생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가 있어!” “아버님, 고정하시고요.” “내가 왜 너 아버님이야? 귀한 자식 학교에 보내놨으면 학교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고.” 학생의 아버지는 시종일관 우리를 선생이라 부르며 반말 투의 공격적인 언행을 이어갔지만, 나 와 부장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상대방에게 제대로 된 항변을 하지 못했다. ‘아버님의 아이가 귀한 자식인 것처럼, 저도 저희 부모님께 귀한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내 머릿속 을 맴도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흥분한 상대방과 대거리를 벌였을 때 이후에 우리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흥분한 아버지와 달리 상대적으로 얼굴을 덜 붉 힌 어머니를 복도로 모시고 나와 이후 처리과정에 대해 자초지종을 말씀드렸고, 어머니의 도움 을 받아 아버지의 화를 누그러뜨리게 한 후 겨우 상황을 종료시켰다. “나이도 비슷한데 서로 반말로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악수하고 화해하시죠. 잘 처리해줄거라 믿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알고 보니 학생의 아버지와 부장 선생님은 비슷한 연배였고, 그렇게 흥분하시던 분이 결국에는 부장 선생님과 악수를 하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 이셨지만, 이미 마음의 생채기가 깊게 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시간이 흐 를수록 사안 처리과정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자 결국 상급기관에 여러 번 민원을 제기 하였고 상급기관에서 학교로 감사가 나왔다. 감사관이 학교로 수차례 내려와 모든 진행 상황, 관련 문서, 하다못해 학부모와 나눴던 대화 내용, 문맥적 의미까 지 샅샅이 조사를 하였다. 어떤 문맥적 의미로 질문을 했는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대답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감 사관의 요구에 나는 범죄자가 된 것처럼 몇 달 전 대화까지 생각 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상급기관의 감사가 진행되는 상황 에서도 그 아버지는 수도 없이 학교를 찾아와 교무실 앞에서 부 장 선생님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늘 대화가 진행되면 우리 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야 했다. 생채기가 생긴 마 음에 또다시 상처가 생기더라도, 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교사는 그래야 했다.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은 그래야 했다. 어 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참고 있어야 했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어떠한 항변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내뱉는 모든 단어들의 문맥적 의미까지 감사관 앞에서 증명해야 했기에, 어떤 말을 하든지 세세한 행간의 의미까지 분명히 기억해야만 했다.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던 나는 수업이 끝 나고 올 때마다 그 아버지가 교무실 앞을 지켜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4층 에 올라오자마자 멀리 보이는 교무실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한 다음에야 발걸 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런 게 환각이구나 싶었다. 이런 굴레는 퇴근 이후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일주일에 수차례씩 전화가 왔다. 몇 달 동안 최근 통화목록 제일 윗줄을 그 학부모가 차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얼굴을 맞닥뜨리고 얘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최소 1시간 이상이었다. 그래도 학생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공격적인 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울먹이며 하소연을 하는 것을 매일같이 들어야만 했다. 나는 상대방의 화와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모든 것을 듣고만 있어야 했고, 늘 긍정적인 대답 을 해야 했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퇴로가 막힌 채로 동물원 우리 안을 맴돌 수밖 에 없는 원숭이처럼 아무런 희망 없이 상처만 점점 깊어져 갔다. 출구가 없는 미로였다. 정말 미 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불안했다. 전화가 오지 않은 날도 꼭 전화가 올 것만 같아 불안했다. 이 전화를 못 받았다가는 또다시 상급기관 감사를 받고 치도곤을 당할 것 같아 휴대폰을 손에서 놓 을 수가 없었다. 추석 연휴 때에도 불안한 모습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어머 니는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스러워 하셨지만 나는 우리 어머니께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이후에도 끊임없이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해야만 했다. 다시 사안 처리과정을 조사하러 온 감사관에게 물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나 의 감정과 상처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냐고,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하소연을 하는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없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런 잘못이 없으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물론 아무런 잘못이 없었기에 벌을 받을 것도 없었지만, 이미 그때는 벌을 받는지 여부는 중요 하지 않았다. 수개월동안 진행된 과정 동안 나의 감정은 수백 번 짓밟혔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기기도 했으며, 늘 전화벨이 울릴 것만 같고, 늘 누군가가 교무실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상급기관에서 주는 벌보다 더 큰 형벌을 받고 있었다. 신경정신과에 가봐 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늘 강한 가장의 모습만 보였는데 자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남 편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붙잡고 울었다. 초여름에 시작된 사건이 겨울이 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결론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극적 으로 화해를 하였고, 상급기관의 감사 결과도 나와 부장 선생님 모두 사건 처리과정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단, 추가의견으로 추후에는 민원인과 대화를 할 때에 보다 공 손한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충고가 덧붙여졌다. 서글펐다. 상대방의 공격적 언사에도 감정을 안 으로만 삭이고 아무런 대거리를 하지 않은 것이 십수 번인데, 더욱더 예절을 지키고 더욱더 공손 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추후에는 더욱더 공손한 예절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사안은 마 무리가 되었다. 이미 수십 번 만나고 수십 번 통화를 한 그 학부모는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 고, 아픈 감정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여러 번 만난 피해학생도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슬펐다. 속으로 ‘이렇게 결론이 날 거면서 왜 그러셨냐고, 이미 가슴에 피멍이 들고, 나의 자존심은 종잇장처럼 구져졌는데 이제 와서 감사해하면 뭐하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허무했다. 슬프고 눈물이 났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지지가 않았다. 교사 심리치료센터와 같은 곳이 있는지 수소문해보 았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산적한 학교 일을 두고 찾아 가서 가슴에 피멍이 들어 온 과정을 털어놓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유일한 약은 시간이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때의 상처가 조금씩 덮어졌다. 하지만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상처가 또 다른 상처에 묻히는 것 이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고, 조그만 사건에도 그때의 상처가 거머리 같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그 사건은 나에게 떨칠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으며, 내 오른손 에는 수십 개의 수포가 늘 자리 잡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한포진과 친구가 되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내 손에 있는 한포진의 흔적처럼 다른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가슴에 상처를 여 러 개씩 안고 계셨고, 또 그것을 당연하듯 받아들이고 계셨다.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에 서 전국의 교사 1,6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교사 가운데 11.9%가 우울증 확실 단계, 28%가 우울증 주의 단계에 속할 정도로 많은 교사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 다. 이는 같은 연령대 일반인들의 우울증 비율보다 약 2배가량 높은 수치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교사들의 스트레스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도 동료 선생님이 정신 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휴직계를 제출했는데, 휴직 사유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우울 증이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당사자의 정신력을 탓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라는 조직이 감정노동에 내몰려 있는 구성원들의 아픔에 눈 감고 있는 것 같아 서 글펐다. 남의 문제 같지가 않아서 옆에 가서 슬쩍 한 마디 건넸다.“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선생님도 교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이잖아요.” 내가 건넨 한 마디에 그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또한 선생님의 눈물의 의미 를 알고 있기에, 꽤 오랜 시간동안 함께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우선 직장이나 조직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감정노동 종사자들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 다. 어쩔 수 없는 갑을 관계라 하더라도,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을’ 스스로 감정노동을 종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감정노동으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입은 구성원들을 위한 심리치료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상처도 질병과 상해로 인한 신체적 상 처만큼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 손의 한포진 흔적도 없어질 것이라 믿는다. 문득 얼마 전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중년 남성분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잠시 후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딸이 상담드릴 예정입니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장려
“나는 ...이다.” 최순애 전화 응대를 하면서 느껴졌던 감정의 차이에 대한 수기입니다.6년 동안 상담하면서 그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로서 상담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최근에 그 고민이 조금이나마 해결이 된 마음가짐을 적어 보았습니다. “행복을 나르는 서울교통공사 최순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열차가 덥다고 한다. 퇴근 시간에 많은 승객이 탔고 관제에서도 모든 열차 냉방 최대로 가동 중 이라고 한다. 당장 시원하게 하라고 한다. 열차가 느리다고 한다. 앞차가 바로 앞에 있다. 2호선 잠실역부터 신도림역까지 역마다 한 대 씩 있다. 만약 자동차처럼 추월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간격이 빽빽해서 할 수가 없다. 당장 지연 시간 회복하라고 한다. 내릴 때 물건을 놓고 왔다고 한다. 어느 열차인지도 모르고 어느 칸인지는 모른다. 모든 열차 모 든 칸을 다 보면 나온다고 한다. 당장 내놓으라고 한다. 열차 안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열차정보는 모르겠고 당장 와서 잡아가라고 한다. 실시 간으로 열차 다 확인해서 잡아가라고 한다. “이용에 불편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부서로 전달하여 조치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상담사 최순애는 말했다. 고객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에 치이다가 퇴근 후 얼 른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텐데, 덥고 느리고 이상한 사람이 시끄럽게 하니 얼마나 짜증나 고 화가 났을까. 얼른 부서로 전달해서 조금이나마 빨리 조치되었으면 좋겠다. 유실물도 역직원 이 가장 먼저 발견해서 고객이 꼭 찾았으면 좋겠다. 지극히 평범한, 서른 살의 사람 최순애는 생각했다. 더운 열차에 지금 드라이아이스를 갖다 주면 해결이 되는 걸까? 열차는 빽빽하게 밀려있는 데 가서 밀어 보면 빨리 갈 수 있는 건가? 열차 탑승할 때 다 혈중 알코올농도 검사해서 0.03%면 태우지 말고 돌려보 내면 되는 건가? 더운 건 당연한 거고 시간표는 못 지킬 수 있는 거다. 유실물도 못 찾을 수 있고 열차에 이상한 사람도 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지하철을 많이 타봤지만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 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당장, 당장 해결하라고만 하는 걸까. 과연 방법을 알고 는 있는 걸까? 한 명의 고객과 통화하는 3분의 시간동안 사람이었다가, 고객이었다가 수십 번씩 바뀐다. 머리 로는 상담사였다가 마음으로는 사람이 된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될 것 같다. “내가 그 쪽한테 화내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봐요. 어릴 때 공부 못했죠? 그러니까 거 기서 나한테 욕먹고 있는 거예요. 좀 똑똑했어봐. 진작 다른데 가서 폼 나게 일하지.” 상담사 최순애는 생각했다. 인바운드 고객센터만 6년째인데 한 번도 상담사라는 직업이 창피 한 적이 없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 말로만 사람을 설득하고 불만을 케어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입 사원들이 3개월을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이 태반일까. 다만 고객은 열차 이용하며 화나는 게 있으니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분명 끊고 나면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 거 다. 그리고 최대한 달래주기 위한 내 노력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 최순애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아는 건지. 고객이 지금 말하는 게 욕이고 폭언인 걸 알 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은 전화로 이렇게 민원 제기하는 악성고객이란 걸 알고 있는 건지. 한편 으로는 후회도 했다. 동료도 다 관두었지만 묵묵히 잘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정말 상담사는 이거 밖에 안 되는 직업인걸까? 상담사가 창피한 적은 없었지만 쉬 운 일이 아닌데 왜 그걸 몰라주는 걸까? 정말 시작부터 잘못된 걸까? 차라리 직설적인 욕설이 낫 다고 생각했다. 상담사 자체에 대한 비하는 6년의 시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 같아 마 음이 불편하고 쓸쓸해졌다. “네, 고객님. 저에게 화내는 게 아닌 것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저도 고객님께 직접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불쾌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으나 상담사 자체를 비하하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상담사 최순애와 사람 최순애는 이 정도 선으로 타협했지만 둘 다 상처받았다. 분명 이 고객은 새로운 하루를 맞으면서 다 잊어버렸을 거다. 그렇지만 마음 어디엔가 저 몇 마디는 떠돌아다니 고 있다. 그러다가 불현 듯 갑자기 나타나서 상담사 최순애와 사람 최순애가 상처를 곱씹게 만든다. “퇴근하고 6호선 타고 오는데 열차 안이 너무 춥더라. 이거 어디로 얘기해야해?” “칸 번호 문자 보내거나 전화하면 되긴 한데 그렇다고 바로 안 될 수도 있어. 그냥 겉옷 하나 들 고 다녀.” 상담사 최순애는 알고 있다. 다른 호선에 비해 6호선이 혼잡도가 낮아 시원한 편이라는 걸. 그 리고 사람 최순애도 알고 있다. 춥다고 민원을 넣는다고 해도 조치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걸 말이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엄마는 어르신들을 직접 부축하며 다니다보니 일할 때 땀 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하철을 타면 한기가 들어서 너무 춥다고 한다. 겉옷을 두 벌이나 가지고 다니는데 말이다. 결국 엄마는 감기에 걸렸고 며칠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다. 지 하철 내 온도를 모든 승객이 만족하게끔 맞출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원망스러웠 다. 정말 누구의 말처럼 온도하나 조절 못하는 걸까. 겉옷 두 벌을 들고 다녀도 감기 걸리는데 도 대체 몇 개를 들고 다니라는 걸까. 지금의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평범한 서른 살도 아니다. 우리 엄마의 딸, 최순애다. “어디야. 왜 이렇게 늦어.” “지금 열차 안인데 사고 있나봐. 열차가 움직이질 않아.” “네가 거기 고객센터 직원인데 왜 인지 몰라?” “바로는 알기 힘들지. 미안해. 너희 먼저 놀고 있어.” 매일 일에 치어 살다보니 친구를 만나는 것도 힘들다. 오랜만 에 만나러 가는데 열차가 중간에 멈춰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아니,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 왜 지연 되는지 방송이 나오기는 한데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일하 고 있는 동료에게 물어보고 싶을 만큼 간절했지만 어차피 가장 바쁠 것을 알기에 참았다. 실제로 는 10분밖에 안 되었는데 마음은 10년이 흐른 것 같았다. 1호선부터 8호선까지 지연도 많고 크고 작은 고장도 있지만 막상 고객 입장이 되니 초조해졌 다. 지금의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평범한 고객이 되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러 사람이 살아. 죽고 싶은 나와 살고 싶은 내가 있어. 포기하고 싶은 나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내가 매일매일 싸우면서 살아간다고.”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킬미힐미의 대사다. 어린 시절 학대의 상처로 인격이 조각난 남 자 주인공을 설득하기 위해 여자 주인공이 했던 말이다. 그 상처와 인격을 하나씩 치유하면서 극 은 진행되고 모든 인격은 결국 한 명이었음을 보여준다. 상담사로서, 평범한 서른 살의 사람으로 서, 고객으로서의 나를 분리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상처받을 게 아니다. 상담사이자 평범한 사 람이면서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이 되는 그저 나 한명의 최순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안에 서 서로간의 다툼과 타협은 있겠지만 이것도 결국 나인 것이다. 지금은 감정노동이 전문 분야의 개념으로 잡혔고 감정노동을 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많 은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노동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상담사들 은 3분의 시간동안 내면의 수많은 내가 서로 싸우면서 응대하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고객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준다면 오로지 한 명의 내가 되면서 위로와 치유를 받게 된다. 그게 아닌 폭언으로 끝나면 계속해서 수많은 내가 싸우면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각을 재며 마음을 조각낸다. 결국 그래도 한 명의 나니까 인정하고 수긍하면 되지만 그러 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체념과 포기를 해야 한다. 상담사는 일부 고객이 말하는 것처럼 쉬운 직업이 절대 아니다. 어느 고객센터나 마찬가지지만 상담 부서는 신입직원의 이탈이 많다. 전화로 안내만 잘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들어왔 다가 실제로 해보니 어렵다 느끼고 포기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6개월, 1년. 그 이상의 시간동 안 고객을 상대하는 우리 상담사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내면의 내 가 서로 싸우면서 타협하기보다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일했으면 좋겠다. 그럼 상담사의 나와 평 범한 사람의 나, 그 외 다른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