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입선
"나는 보육교사다" 김현지 보육교사 생활을 하며 느꼈던 일들과 사례들을 이야기하며아이들, 학부모를 상대하며 느껴야 하 는 감정들과 보육교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임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나는 보육교사를 한 지 20년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원교사로 6년간을 일하다 어린이집 에서 근무한지 20년이 되어 나의 교사 경력은 총 26년이다. 어린이집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나는 한 직장에서 옮기지 않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아가씨일 때 근무를 시작하여 지금은 고1, 중2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남들은 나의 경력을 듣고 이젠 수월하게 일을 하겠다고들 한다. 하지만 교사 경력이 26년인 나 는 아직도 보육교사 일이 만만치가 않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여 즐겁고 보람된 일 이 많기도 하지만 어떨 땐 내가 이일을 하는 게 맞나?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었다. 해가 가면 갈수록 해야 할 일은 더 늘어나고 엄마들은 요구하는 것이 더 많아졌으며 감당이 되 지 않는 아이들은 더 많이 늘어만 가는 듯하다. 나 혼자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많은 보육교사 들이 경험하고 느껴 현장을 떠나 이곳을 뒤도 돌아보지 않는 교사도 많으며 그래서인지 이직률 이 다른 직장에 비해 높기도 하다.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라 쉽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누군가가 일을 저질러도 내가 대하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나의 감정을 쏙 뺀 채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예의 없는 학부모님들의 무리한 요구에 울그락푸르락 얼굴이 붉혀지고 가끔 눈물을 보이는 날이 있어도 우 리 아이들에겐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쓸 때도 많았다. 20년 동안의 어린이집 생활을 하며 별의별 사건들도 겪고 말도 안 되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 나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그 중 기억나는 몇 가지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싶다. 몇 해 전 우리 원 만2세 반에 갑자기 이사를 간 영아가 있어 12월 초 새 영아가 오게 된 일이 있 었다. 12월이면 웬만한 영아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은 하나, 새로 온 영아는 자신의 의사표현이 잘 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 영아라 교사가 좀 더 유의해서 봐야할 상황이었다. 2주 정도는 적응기간으로 영아들이 많은 시간을 원에서 보내지 않고 짧게 인사하고 헤어지기, 친구들과 얼굴익히기, 오전 간식 먹고 귀가하기 등 적응 계획대로 적응 기간을 갖는다. 영아는 생각보다 잘 지냈으며 등원할 때도 아침에 기분 좋게 와 어린이집 현관문이 열리면 할 머니와 인사도 안하고 들어오려고도 했다. 담당 선생님이 아이와 지낸 일들을 이야기 하며 잘 지내고 있는가 했는데 다닌지 3~4일이 되 었을까? 담당 선생님께서 보낸 아이의 일과사진을 보고 할머니가 노발대발하며 전화를 하셨다. 사진은 아이가 두 손을 살짝 들고 있던 사진이었다. 마침 그날 담임교사가 “○○는 사진 찍기도 힘들어요. 이름을 불러도 눈 마주침이 안 되고 워낙 아이가 교실을 돌아다녀 다 흔들린 사진밖에 없어요. 그나마 오늘은 놀이하다 만세하는 사진이 찍혀 그거 보낼 수 있었네요.”라고 말하는 것 을 들었는데 할머니는 그 사진을 보고 벌을 받는 모습이 아니냐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시더니 아 이가 요 며칠간 이상한 행동을 했다며 구석에 가서 울거나 의기소침해 있거나 이유 없이 떼쓰고 울었는데 선생님이 애 벌을 줘서 그러는 거 아니냐며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하더니 결국 경 찰서에 아동학대 신고를 하여 담당형사가 CCTV까지 열람하는 일까지 생겼다. 결국 CCTV 열람 후 무혐의로 되었지만 할머니의 억지 주장과 과대망상에 우리 교사들은 내가 겪은 일인 양 쓸쓸히 그 해 12월을 마감하였다. 그 아이는 너무 과한 과잉보호에 기본생활은 물 론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는 것이 없던 아이였으며 언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의사소통 또한 되 지 않았던 영아였다. 고작 3~4일 잠깐 다녀간 아이에게 교사가 무얼 했다고 하는 건지 황당한 할머니의 주장에 그 교사는 12월 한 달을 울며 보냈으나 맡은 그 반 아이들에겐 어떻게 대했을지 남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그 아이일 뿐 다른 아이들에게 평상시처럼 대해야 하는 게 보육교사들의 현실인 것 이다. 아이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님들은 교사가 안 좋은 일로 표정이 조금만 굳어 있 거나 교사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지 않으면 득달같이 원장님께 교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거나 교사의 태도에 대해 건의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하였다. 세상을 살아가며 교사에게 행복한 일이 늘 있을 순 없다. 10여 년 전 폐암으로 아프셨던 아빠가 항암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셨으며 입원하신지 10여 일만에 하늘나 라에 가시게 되었다. 때는 2009년도 2월, 2008학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였으며 1년 중 가장 크다는 졸업식과 학예발표회가 있던 달이었다. 아빠는 어린이집 발표회 6일을 앞두고 하늘나라 에 가셨던 것이다. 원장님은 큰 행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워낙 큰일이므로 대체교사를 써서 편히 장례식을 치르게 해 주셨다. 그리고 장례식을 마치고 바로 예정대로 잡힌 행사를 토요일에 하게 되었다. 슬픔을 진정하지도 못한 체 결국 행사를 치렀으며 행사하는 내내 아이들의 신나는 율동 과 학부모님들의 귀한 추억을 위해 티 내지 않고 시간을 버텼었다. 눈과 입은 웃고 있었으나 나의 가슴은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지는 듯했다. 행사가 잘 마쳐졌 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살짝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상을 당한 것을 알고 있던 학부모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행사를 위해 애쓴 나를 위로해 주시는 학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생 겼지만 한 편으론 사랑하는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는데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 도 들었다. 몇 해 전 함께 일하던 교사도 갑작스럽게 남편이 사고를 당해 장례를 치른 일이 있었으나 마 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일주일 만에 출근하여 아이들을 대하며 다시 수업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 선생님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늘 미소로, 목소리는 경쾌한 솔톤으 로 대하기가 과연 쉬웠을까?? 사람을 상대하면서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란 쉽지 않다. 나는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보육교사들을 응원하고 싶다. 가정에 있으면서 애 보기 힘들어 어린이집으로 내모는 엄마들이 허 다하고 아침도 먹이지 않고 얼굴도 씻기지 않은 채 또한 밤새 찼던 기저귀조차 갈지 않고 등원시 키며 너무도 당당하게 “세수 안 했어요. 얼굴 씻겨주고 로션도 발라주세요.”하며 당당하게 말하 는 일부의 학부모님을 상대하면서도 “스마일~”하며 웃음을 보여야 하는 보육교사를 응원한다. 부모도 자격이 있어야 아이를 낳고 양육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의 교육을 받았으면 한다. 보육 교사에게 해마다 교육시키는 아동학대예방교육 또한 부모도 똑같이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교육 을 받아 잘못된 양육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길 바란다. 이제는 부모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서 부모에게는 기 본적인 교육조차 하지 않고 그저 보육교사를 애 보는 사람으로만 취급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 면 한다. 열거하지 않은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결론은 보육교사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감정노동자라는 것이다. 어떤 교사는 누군가 의 소중한 딸이며 누군가의 따뜻한 엄마이며 누군가의 사랑스런 동생이거나 누군가의 친절한 이 모, 고모일 수도 있음을 알고 의심부터 하지 않고 교사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입선
“얼룩” 김시영 백화점 판매직으로 10년 이상을 근무하였습니다.감정노동의 시련과 아픔을 겪었고 아직도 많은 감정노동자가 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직접 겪었던 감정노동 수기로 감정노동자들의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가 고민하고 깨닫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써 내려간 글입니다. 하루 12시간의 노동. 족히 세 시간은 걸리던 통근시간. 다리가 퉁퉁 부어 몸을 펴고 잠들 수조 차 없어 모로 누워 잠을 청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급작스레 돌아가시고 가장 아닌 가장이 된 형편. 겨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어리고 가난했던 내가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구인광고를 뒤지고 뒤져 가족들을 위해 조금이라 도 많은 월급을 준다는 백화점 판매직에 뛰어 들었다. 편찮으신 어머님과 어린 두 동생과 살아 가고 아니 살아내기 위해 선택했던 백화점이란 직장은 매일 다른 얼굴로 나를 멍들이고 있었다. 몸은 항상 무거웠고 생활은 버거웠다. 건강했던 체력과 장녀로서의 책임감으로 아등바등 버텨 내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눈과 누군가의 입은 나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너지게 만들었다. 아래위로 나를 훑으며 조롱하듯 보내던 시선. “내가 여기 백화점에서 한 달에 얼마를 쓰는 줄이나 알아?”“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 백화점에서 일이나 하고 있지!” 인격적 대우는커녕 폭력에 가깝던 고객들의 말투. 거기에 그를 넘어선 성희롱적 발언도 심심찮은 일이었다. 도심의 중심에 휘황찬란하게 우뚝 서 있던 백화점. 그 속에서 화려한 화장품을 화사한 옷을 판매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나처럼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자존심보단 매출을 지켜야 했고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매무새를 가다듬고 억지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다 그런 거야! 백화점 다니면서 나도 이 욕 저욕. 안 들어 본 적 없어. 내 잘못과는 상관없이 고객 들은 자신의 기분대로 우리를 막 대하지. 나중엔 웬만한 일 아니면 상처도 받지 않게 된다니까.” “그래! 우리는 자기들 맘대로 무시해도 되는 존재인거지. 어떨 땐 고객의 강아지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이라니까. 어떤 손님은 우리가 가난해서 백화점에 다니는 거 자체가 잘못이라더라!” 동료들과 선배들의 하소연은 서러웠지만 나또한 겪고 있는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들에게 위로란 건 남들보다 수 시간은 늦던 퇴근 시간 후. 울며 분노하며 삼키는 쓰디 쓴 소 주 한잔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한잔 술에 취해야만 잠들 수 있던 날도 부지기 수였다. 연유도 없이 쏟아지던 어이없는 욕설과 갖은 짜증에 지쳐 유니폼을 벗고 백화점을 뛰어 나가버 릴까. 끝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하던 자존감에 가슴이 찢겨 출근하지 말아버릴까. 고민과 갈등은 거칠게 나를 잡아 흔들었지만 매일 밤 큰 딸아이의 다리를 주물러 주시며 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와 고작 초등학생이던 두 동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참자! 참고 참다보면 오늘도 어찌어찌 지나가겠지.’ 그날도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올라탔다. 여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던 날이었다. 주말이라 바쁜 편이었지만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했고 구내식당에서 늘 비슷했던 메뉴의 점심을 먹었다. 휴게실에서 아픈 다리를 주물러 가며 조금 쉬다 그리 다시 매장 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성의 목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고 갑자기 누군가 내게 달려와 무엇을 던졌다. “야! 너지! 이 따위 쓰레기를 판거 너지! 얼굴 보니 딱 알겠네. 뭣 같이 생겨 가지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 얼굴에 던져진 것은 다름 아닌 여성용 속옷이었다. 고객은 더 큰 소리와 더 험악한 말투를 쓰며 나를 채근했고 나는 금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변 매장 직원들은 물론 수많은 손 님들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객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쥐구멍이라도 있 다면 숨고 싶었다. “그러니까! 애가 나한테 이딴 걸 팔았다니까. 저기 내가 가져온 속옷 보이지? 속옷까지 파랗게 변한 거 안 보여? 내가 얼마나 짜증이 났으면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내 속옷까지 가지고 왔겠어? 이런 거지같은 걸 팔면 어떡해! 그것도 이런 백화점에서?” 한 달 전에 구입했다는 옷. 영수증도 없고 교환할 수 있는 시기도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옷의 이염이 심해 자신의 값비싼 속옷까지 버렸다며 고객은 물질적, 정신적 보상금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전에 그 옷을 판매한 나의 잘못을 빌라고 말해왔다. 이미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수차례나 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다시 한참을 90도로 깍듯이 고개 를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해야 했다. 사과와는 상관없이 다시 이어지던 모진 말들.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온 몸이 벌벌 떨려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는 것 외엔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속옷에 이어 쇼핑백과 핸드백까지 던지던 고객은 매니저님과 백화점 직원분의 설득으로 조금 씩 안정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마치 죄를 지은 죄인처럼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머리 를 조아리고 있었다. 절대 원치 않던 눈물이 갑자기 뚝. 뚝 떨어졌다. “뭘 잘 했다고 울기까지 해? 참 가지가지 한다! 백화점에선 저딴 애들 교육 안 시키고 뭐하는 지! 짜증이 나서 죽겠네.” 그때였다. “아주머니! 여기 일하는 직원이 만든 옷도 아닌데. 왜 이 아가씨에게 화를 내요? 가만 보니까 아 주머니 딸뻘쯤 되겠는데 아주머니 딸이 어디 나가서 이런 대접 받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옷의 얼룩은 지우던가 아주머니 말대로 보상받으면 되겠지만, 이 아가씨 마음에 난 얼룩은 어쩔 건데 요. 아주머니가 보상해 주실 수 있겠어요?” 화를 내던 고객은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삿대질까지 시작했지만 나의 입장을 대변해 주시던 고객은 내게만 살짝 미소 지어 주신 후 자리를 떠나셨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우느라 잠들지 못했고 결국 며칠을 앓아누웠다. 보상 문제로 인해 우리 매장 의 매니저님과 나는 몇 번정도 불러 다녀야 했고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내 얼굴에 던져진 속 옷과 내 가슴에 꽂힌 비수 같은 말들은 나의 명치를 쿡쿡. 쑤셔대고는 했다. 모멸감과 자괴감까지 느껴야 했던 그날의 일은 지나가던 고객의 말씀처럼 퍽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내 가슴에 얼룩으로 남겨져 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이제 더 이상은 백화점 판매원이 아닌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 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 시절의 나와 같은 감정노동자들을 마주 한다. 어느 마트의 계산대 앞에서 귀를 타고 전해 오는 수화음 안에서 푸짐한 음식이 즐비한 식당 속에서 또 곳곳에서 내게 친절히 말 걸어 주며 내 아이들에게 환한 미소를 건네어 주는 수많은 그들을 만난다. 그리고 부러 곱씹어 본다. 고작 내 기분에 따라 혹은 교환할 수 있는 물건들 때문에 그들의 마 음속에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남긴 일은 없었는지를. 우리에게 과연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를. 우리가 그들에게 먼저 내민 따스한 말 한마디와 작은 미소가 가져올 아름다운 변화에 대하여.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입선
“감동노동자가 되는 그 날을 꿈꾸며...”김경진 콜센터에서 15년간 상담사와 관리자로 일을 하며 겪었던 수많은 일 중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감정노동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러한 감정노동이결국 한 개인 이 감정노동을 감동노동으로 변화시킬 사회적 기업가를꿈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음에 대 해 작성하였습니다. “나 좀 안아줘”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늘 남편에게 하는 나의 첫마디.남편 품에 안겨서 하루 종일 어떤 민원 고객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는지 쫑알쫑알 푸념에 가까운 신세한탄을 하고 나야 내 마음에 눌려있던 큰 돌덩어리 하나가 살짝 내려진다.보험사 콜센터에서 상담사를 거쳐 슈퍼바이저까지 상담일을 한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언 제나 늘 새롭고 다양한 민원 고객들이 매일 나를 기다리고 이 감정노동에는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특히, 그 날은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대박인 날이었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후처리 업무를 도와주고 여 기저기서 날아오는 메모문의에 답변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상담직원 한명이 울면서 달려온다. 50대 남자고객인데 해지환급금을 문의하신다고 해서 정보 확인을 시도했지만 본인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금액을 알려 달라 화를 내고 상급자를 바꾸라고 했단다. 우선 직원을 진 정시키고 전화를 이어받아 차분하게 고객과의 통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고객의 반응은 냉담하다. 아니 싸늘하다. 악성고객의 필이 느껴진다...“아니, 내 개인정보는 니네들 말처럼 소중하니까 말해줄 수 없어. 내 번호 찍히지? 나 맞으니까 그냥 해약환급금 알려줘.”상급자가 통화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 확인을 한 후 안내가 가능함을 거듭 말씀드렸지만 이 미 고객은 본인의 말씀을 거역한 콜센터 상담직원에게 화가 날 대로 화가나 더 이상 들리지 않 는 것 같다.그러더니 갑자기 “니가 니 개인정보 말해주면 나도 내 개인정보 말해줄게.” 나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답하고 그렇게라도 빨리 이 고객과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넌 이름이 뭐냐? 넌 몇살이냐?” 묻기에 이정도야 일반고객들도 가끔 물어보시니 바로바로 대 답해 드렸다.그랬더니 “넌 결혼은 했냐? 넌 애는 있냐?”응? 뭐지? 하는 기분은 들었지만 결혼은 했고 아이도 있다 대답했다.그러자 고객이 갑자기 툭 던진 한마디... “너 남편이랑 한 달에 몇 번하냐? 잘하냐? 그것도 대답해봐.” 아마 내 개인정보라며 대답 안 해줄 것이라 예상하고 질문을 던졌는데 너무 따박따박 대답을 올곧게 한 내 탓인가? 그래서 너무 얄미워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성희롱 발언을 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불특정 여성에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던진단 말인가. 순간 온몸이 얼어붙고 머리가 하얗고 말문이 막혔다.전화기 속에 갇힌... 친절해야만 하는 콜센터 상담사. 24살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원서를 낼 때 콜센터가 사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모르고 그냥 지원서를 냈다. 덜컥 합격을 하고 보험교육을 받으며 콜센터가 전화로 고객응대를 하는 곳 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공부 가 참 재미있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출근하고 맞닥드린 상황을 헤쳐 나가 기 급급했다. 하지만 1년, 2년 경력이 쌓이면서 전화응대도 익숙해지고 업무도 숙달되어 가면서 일이 점점 재밌어졌다. 콜센터 상담사의 이직률은 굉장히 높고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강도 높은 일이다. 고객들 은 콜센터 상담사면 일단 무시하고 보는 것 같다. “그냥 앉아서 전화 받는데 뭐가 힘드냐.”,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지?” 하는 등의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나도 일해보기 전에는 아무나 다 하는 그런 쉬운 직업인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이 ‘고객상담’ 이라는 직업은 정말 하늘 이 내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과 귀와 손과 머리가 한 번에 동시에 움직이고 상호협조가 되어야한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 면서-그것도 매우 친절하게 존칭과 상황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면서-고객이 원하는 업무를 3~4 분 내에 정확히 파악하고 전산을 조작하고 금액을 입력하고 하는 등의 행위를 한꺼번에 해야 한 다는 것이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정확한 업무처리도 중요하지만 콜센터 상담직 원들이 회사와 상사에게 가장 많이 요구 받는 것이 ‘친절’이다. ‘사물존대’ 라는 신생단어가 생길 정도로 고객의 물건에까지 존칭을 사용하고 예쁜 목소리로 ‘솔’톤을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 띤 음성과 친절한 말투를 사용해야 한 다. 미소 띤 음성은 진짜 미소를 지어야지만 들리지 무표정에서는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콜센터 상담사들은 입사와 동시에 책상 앞에 작은 손거울 하나가 놓여진다. 모니터를 보면서 본인이 미 소 띤 음성으로 고객을 응대하는지 스스로를 감시하며 일하라는 의미이다. ‘미소’를 머금은 음성과 친절한 말투는 고객에게 해야 할 상담사의 첫 번째 의무이다. 하지만 166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고객은 본인에게 향하는 상담사의 미소 띤 음성과 친절 한 말투가 고마운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 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불친절’하 다며 민원을 제기하거나 언짢아한다. 또 반대로 고객의 상황이 무언가 불만이 있거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 해 클레임을 제기하는 경우라면 상담사의 미소와 친절 이 그들에게는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담사는 그 상황에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회사에서 정한 매뉴얼 이외의 범위를 벗어나 고객을 응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객들이 “너희는 앵무 새니? 왜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러니?” 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의 감정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친절한 말투와 미소가 감정노동 직원들 의 무기가 아니고 적극적으로 고객의 불만에 대안을 제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이 드라인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 범위와 권한은 회사가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대 로 당하고 결국 상급자에게 전달되면 결국 고객이 원하는 대로 일이 해결이 된다. 처음 교육을 받을 때 고객에게는 절대 “안 됩니다.”, “불가합니다.” 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 대신 “어렵습니다.”라고 해야 한단다. 그런데 고객은 “어렵습니다.”라고 하면 “그래서 된다는 거예요, 안 된다는 거예요?”라고 반문하며 상담사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절대 안 되는 거면 ‘어렵다’가 아니라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직원에게 교육을 해야 하고 어차피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라면 직원과 고객이 실갱이 할 필요 없이 직원 선에서 가이드라인 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부여해 줘야 한다. 안내를 할 때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고객이 오해하거나 곡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된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고객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객을 위해서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라고 정확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담사들을 힘들게 하는 다른 한 가지는 녹취와 심각한 관리이다. 고객과의 분쟁상황 167 03 수기 부문 발생 시 해결을 하기 위해 녹취를 하는 목적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녹취를 듣고 메모를 통해 회사 는 상담사의 친절도를 지적하거나 업무지시를 한다. 그리고 전산의 로그인, 로그아웃, 휴식, 작 업시간체크 기능을 통해 상담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심한 곳은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체 크하고 가는 횟수를 제한하거나 가는 순서를 정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고 나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통제하는 상황에 놓여 진다면 그것만큼 심각한 스트레스는 없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통제하기 때문에 이 역시도 감정노동이다. 감정노동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 중에 나의 감정을 억누르고 실제 내가 느끼는 감정과 다른 통제된 감정으로 노동에 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감정노동에 대한 대책 역시 회사가 가지고 있다. 고용된 직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통제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센터를 운영하고 직 원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센터에서 상담하는 직원들을 공장에서 돌리는 기계나 로봇쯤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를 정하고 직원과 합의된 선 에서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도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들의 감정을 대우해 줘야한다. 이것이 감정노동 줄이는 방법이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만두면 되잖아요.” 라고 말하면 사실 할 말 이 없다. 하지만 대체로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학력이 낮거나 생계형이거나 경력이 단절되었거나 하는 등의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이 매우 제한적이고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가진 경력이 상담일이여서 이곳을 나가더라도 더 나 은 환경의 콜센터에 입사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라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 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라도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정책적 16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으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처음에 언급했던 그 성희롱 고객에게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던 것도 악성고객을 응대하는 매뉴 얼이 만들어져 있었고 이를 적절히 사용하도록 회사에서 마침 권고했던 상황이라 가능했다. 사 실 그전까지는 매뉴얼이 있어도 혹시나 고객에게 그런 식으로 응대했다는 상사의 불호령이 있 을까봐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참다가 울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악성고객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대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정비하고 공식화하면서 나는 든든한 백 그라운드를 믿고 친절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성희롱 고객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매 뉴얼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도 아니라. ‘고객을 진정시키고 단호한 어조로 자제를 요청하고 녹음 이 되고 있음을 언급하여 증거를 확보하고 책임자를 호출한 후 법적 조치가 될 수 있음에 대해 구두경고를 했음에도 계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한다면 더 이상 응대가 불가함을 안내하고 상담을 종료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악성고객 응대 서비스가 그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고객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회사 분위기와 혹시나 직원의 응대로 고객 불만이 생길까 걱정하는 관리자 때문이라 생각한다. “너 하나만 참으면 민원고객도 없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니 그저 참아라.” 하던 말도 안 되는 감 정노동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어이없는 성희롱을 했던 그 고객도 녹음이 되고 있고 이는 법적으로 조치가 될 수 있다 는 나의 단호한 말투에 더 이상 성희롱 발언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나는 나의 감정 을 통제하고 나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으로 그 고객과의 통화는 마무리했다. 법적 조치가 된다 는 말에 겁을 먹은 건지 정보 확인을 하고 해지환급금을 안내하는 방법으로...그것 외에는 방법 이 없었으니까. 이제는 그땐 그랬지하며 웃으며 안줏거리 같은 재밌는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더럽다..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하는 수치심에 모멸감이 들었다. 감정노동자이기 때문에 그 개인의 감정이 노동의 대가인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공공의 감정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감정은 소중하고 그 소중한 감정이 노동으로 인해 생채기가 생기지 않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15년간 콜센터에 재직하면서 상담사, QA, 슈퍼바이저 등 많은 보직을 경험해보았고 수천여 명 의 고객을 응대했다. 그래서 그만큼 수많은 감정노동과 마주했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정신적, 육 체적 상처가 크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감정노동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참기만 하는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감정노동을 바꾸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래서 나는 지금 수많은 감.정.노동자가 감.동.노동자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노력을 시 작했다. 모든 노동자가 감동받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최우수
“아빠의 비밀”고철민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우수
“그냥 한마디...”손정기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장려
“작은 배려가 배여있는 우리 삶”송유진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장려
“이상하지 않나요?”(가명)남정연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입선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 감정 노동자입니다.”김준성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입선
“어느 알바생의 일기장”김혜빈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입선
“작은, 그 한마디”정호섭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웹툰부문 입선
“행복한 우리집”박미란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1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동영상 부문 대상
〈감정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하자〉 by 영덕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