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툰 - 운동강사 편
2021.07.14
감정툰 - 놀이공원 노동자 편
2021.07.14
감정툰 - 콜센터 노동자 편
2021.07.14
감정툰 - 호프집 서빙 알바 편
2021.07.14
감정툰 - 구급대원 편
2021.07.14
감정툰 - 배달노동자 편
2021.07.14
[카드뉴스] 52시간제 확대적용
2021.06.28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최우수
“택배는 배송중 마음의 병은 치료중”이호권 택배기사로 10년 남짓 일했던 지금은 쉬고 있는 택배기사의 이야기입니다.매일 백건 이상, 많을 때는 수백 건의 택배를 배송하면서 수많은 고객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택배기사가 감정적으로 힘 든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의 병이 생겼던 경험담을 적었습니다.디스크라는 육체의 병과 함께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은 택배기사의 이야기로,택배기사는 육체노동자이면서 감정노동자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위잉~ 진동이 울리고 스마트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 다가 음성사서함을 넘어가기 바로 전에 수신 버튼을 터치했다. 카센터에서 온 전화였다. 점검을 맡긴 차의 검사가 끝났다고 했다. 등록되지 않은 낯선 전화가 울릴 때, 가슴이 덜컥하고 받기 망 설여지는 것은 10여 년 가까이 택배 일을 하고 내가 얻은 직업병이다. 동네 선배형의 일을 돕다가 화물차 지입으로 시작하게 된 택배 일을 10년 가까이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택배 물량도 급격히 증가했고 일거리도 끊 이지 않다 보니 택배기사로 꽤 오래 일하게 되었다. 친절기사로도 뽑혀봤고, 지역 물량 탑도 찍 어봤지만 이 일이 나에게 허리디스크와 함께 마음의 병 까지 만들어 줄줄은 몰랐다. 택배기사는 택배를 배달하는 육체노동자인 동시에 매 일 적게는 백여 명, 택배 물량이 많을 때는 수백 명의 고객과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무거운 택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카트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상자들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육체노동의 영역이다. 택배를 받는 고객들과 만나서 택배를 전달하는 그때는 감정노동자가 되어서 고객들과 상대해 야한다. 일선에서 고객과 바로 얼굴을 대하는 택배기사이기에 택배 물건에 대한 클레임은 잘못 이 있든 없든 1차적으로 바로 우리 택배기사들이 받게 된다. 비난과 욕설이 섞인 전화를 매일 받 다보면 차츰 낯선 전화번호가 뜰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몇 가 지 사건들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택배를 시작하고 1년 남짓 된 시기였다. 아직 예비군이 끝나지 않아서 향방작계라는 6시간짜 리 교육을 받아야했다. 하필 예비군 일정에 물량이 몰려서 몇 번을 연기한 끝에 11월에 마지막 교육 일정만 남아 있었다. 그것마저 참석하지 못하면 당장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연말 시즌 전이었고, 김치 폭탄이 터지는 김장철을 피한 시기여서 하루 물량이 150건 정도 되었 다. 50건은 옆 동네를 담당하는 기사분에게 부탁을 드리고 100건 중에 냉동식품 같은 것은 밤늦 게라도 훈련이 끝나면 배송하고, 남은 건 다음날 배송하려고 마음먹었다. 고객들에게는 이런 상 황을 설명하는 긴 문자를 단체로 발송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문자가 쏟아졌다. 훈련 잘 받으라는 응원의 문자도 있었지만 배송이 늦은 데 대한 보상을 하라는 문자부터 오늘 안에 배송을 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문자, 그리고 차 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욕을 적어서 보낸 문자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하나 한숨이 나왔다. 훈련 중에는 핸드폰을 꺼놨다가 끝난 후에 켜니 또 문자가 쏟아 졌다. 그날은 새벽까지 배송을 해야 했다. 마지막 택배를 배송하고 트럭에 앉았는데 눈물이 흘렀다. 택배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김장철은 김치 택배 때문에 택배기사들의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김치를 사 먹는 일이 일상 적이라서 평소에도 김치 택배를 배송할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평소처럼 한두 개가 아니라 김장철에는 매일 여러 상자를 배송하게 된다. 김치 전문 업체들은 새지 않게 두꺼운 비닐로 포장하고 케이블 타이로 꽉 조여서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과 함께 배송한다. 김치의 발효 를 늦춰서 봉투가 부푸는 것도 방지되고 김칫 국물도 새지 않는다. 일반 고객들은 보통 김장 비닐봉투 한 겹에 김치를 담아서 종이박스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추운 김장철이지만 김치가 발효되면서 가스가 발생해서 비닐이 부풀고 그러다 보면 찢어지거나 터지고 김칫국물로 다른 택배까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김장철이면 택배기사들은 김장 비닐봉투 여러 장을 차에 비치해둔다. 언제 어디서 김치 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12월 중순, 남쪽지방도 김장을 끝낼 때쯤이었다. 한동안 이른 추위 때문에 움츠러들었는 데 그날은 날이 풀려 봄날처럼 따뜻했다. 배송물량도 많았고, 길에 차도 많아서 배송이 지체 되었고, 따뜻한 날씨에 트럭 안에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배송을 위 해 문을 열었는데 시큼한 김치 냄새가 쫘악 퍼졌다. 다른 택배에까지 물이 들어버리면 망한 다는 생각에 급하게 폭탄을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종이박스에 포장된 김치였다. 상비하고 있던 김장봉투에 얼른 담고 물티슈와 걸레로 다른 택배에 묻은 김칫 국물을 닦아냈다. 다행 히 배송 막바지여서 남은 택배가 얼마 없었고 김치박스 근처에 다른 택배가 몇 개 없어서 오 염된 부분이 적었다. 김치를 배송받은 고객은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했다. 시골의 어머니께서 연로하셔서 대충 포 장하셔서 택배기사님을 힘들게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께서 보낸 김치가 새서 속상할 텐데 이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내가 더욱 미안해졌다. 김칫 국물이 묻은 박스를 받은 다른 고 객분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하니 다들 이해해주셨다. 물건에 이상이 없으니 괜찮다고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배달한 집에서 문제가 생겼다. 김칫 국물을 닦는다고 닦았는데도 박스에 스며 들었던 물기를 다 닦지는 못했는지 박스에 있던 김칫 국물이 전실 바닥에 묻었다. 택배 고객 은 걸레를 바닥에 던지더니 다 닦아 놓고 가라고 했다. 처음 당하는 상황이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걸레를 집어 들었다. 전실 바닥의 김칫 국물을 다 닦고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박스를 가져다 버리라고 했다. 겉박 스는 김칫 국물에 오염되었지만 다행히 이중포장으로 안에 있던 택배물품은 멀쩡한 것 같으 니 냄새나는 겉박스는 나보고 가져다 버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항의하기도 전에 아저 씨 잘못이니 아저씨가 가져다 버려야 한다며 중문을 쾅 닫아버렸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 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박스를 주섬주섬 챙겨서 나왔다. 12월 밤인데도 춥지 않 았는데 마음은 참 추운 날이었다. 그 외에도 감정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은 많았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유수함에 택배 를 넣으라고 했으면서 새벽 1시에 전화해서 택배를 어디에 두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잠 결에 받아서 정신을 차리고 유수함을 찾아보시라 했더니 왜 유수함에 넣었냐며 화를 냈다. 그 러면서 “저러니 택배나 배달하지.”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는 사람 정도는 웃어넘기게 되었다. 분명히 택배를 받았으면서 택배를 받지 못했다고 나를 도둑놈 취급하던 사람도 있었다. 온 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책들은 도서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기사들이 배송한다. 그런데 접 수 시간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일반 배송기사들이 배송할 때도 있다. 바로 그런 케이스로 책 을 배송했을 때였다. 분명히 정확히 배송했고 수취인이 있었는데 받지 않았다며 나에게 계 속 클레임을 걸었다. 난 배송했으니 온라인 서점과 해결하라고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 에게 전화해서 자기네 식구는 받은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똥이 더러워 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마음으로 무슨 책인지 물어서 배송하는 길에 서점에 들러 한 권 사다가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서 경비실에 부탁해서 CCTV를 보여 달라 고 했다. 거기는 내가 분명히 배송하러 올라가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손에는 택배가 들려있었고, 내려올 때는 없는 것까지 다 있었다. 억울함을 풀고 싶었지만 해당 고객의 집을 찾아가 거나 하는 일은 불법적인 일이 될 수 있다며 주변에서 말렸다. 난 도둑의 누명을 쓰고도 억울 함을 풀 수 없었다. 명절 때면 물량이 밀려서 신선식품 배송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핸드폰을 통해서 욕설이 날아든다. 어린이날이면 자녀들 선물이 왜 이리 배송이 안 되냐며 또 격앙된 목소리로 욕하 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배송 동선이 있고 순서가 있는데 무조건 자기가 지금 당장 써야하니 자기 집부터 오라고 강짜를 부리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객들을 대하면서 가슴에 병이 생기고 낯선 번호로 전화만 와도 전화 받기가 무서워졌다. 물론 좋은 고객도 많다.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두는 분들. 컵은 그냥 마시 기 힘드니 캔이나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시원하게 해서 주는 분들. 착불인데 자신이 집에 없 어서 미안하다며 손편지와 함께 착불비를 문에 붙여놓고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문자를 보 내는 분들. 겨울이면 고생하신다며 핫팩을 쥐어주시는 분들.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분들도 많다. 좋은 고객분들 덕에 힘이 나다가도 화내고 욕설을 하는 고객들을 보면 힘이 또 빠지고 만다. 100명의 좋은 고객이 주는 기운보다 한 명의 욕설이 더 큰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 한 두 번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소주 한 잔 하고 털어버릴 수도 있지만 매일 계속되는 일상 에서 항상 욕을 먹고 때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게 되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또 상처가 나 서 결국 덧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10년간 쌓여온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 때문에 잠시 일을 쉬고 지금은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택배를 기다릴 때의 애타는 심정을 택배기사들도 잘 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배달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떤 택배기사도 고객에게 한 번 당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택배 를 늦게 배송하거나 일부러 박스를 밟고 찢는 짓은 하지 않는다. 모든 고객이 소중한 택배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 욕 문자와 비인간적인 대접은 한 가장을, 한 노동자를, 그리고 한 사람을 얼마나 힘들 고 아프게 하는지 알아주었으면 한다. 전자제품 AS센터에서 일하는 친구 녀석도 나와 비슷한 경우다. 휴대폰 AS를 하는 녀석은 항상 웃으며 고객을 대하지만 친구들끼리 만나면 잘 웃지 못한다. 고객을 응대할 때 담배 냄 새가 날까봐 담배도 끊을 정도였던 녀석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서 술이 늘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라며 강짜를 부리는 고객을 매일 상대하면서 하루하루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있다. 택배기사도, AS기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도 항상 고객입장에서 생각하며 최대한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일명 ‘진상’이라고 불리는 고객 들이 좀 덜하지 않을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 앞에 두고 가서 죄송합니다.” “벨을 누르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늘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하는 나는 죄송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생각한 적 도 있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우수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아빠입니다.”고창균 어릴 때부터 저의 꿈은 교사였습니다.그런데 언젠가부터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그리고 예전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선생님을 우러러보았지만,지금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글은 학교폭력 담당교사로 근무하며 경험했던 감정노동에 대해 썼습니다.학부모의 폭언과 항의에 시달렸지만 어디에다가도 항변을 하지 못한 채, 도리어 상급기관 감사까지 받았던 저의 아픈 경험입니다.그동안 ‘남의 집 귀한 자식을 학교에 보냈으면~’으로 시작하는 학부모의 폭언과 항의가 많았습니다.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아빠입니다.” “그건 그냥 수포가 아니고, 한포진이라는 피부 질환이에요. 몸에 면역성이 저하되었거나, 극심 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지요. 아마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일단 스테로이드제를 먹으면서 연고 처방을 좀 해보도록 하죠.” 그렇게 시작된 한포진과의 인연은 3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이제는 수포를 억지로 터트리지 않 을 정도로 친구처럼 익숙해졌다. 3년 전 그때는 학교에서 학교폭력 담당 교사로 일할 때로 온갖 민원과 항의에 시달릴 때였는데, 그 사건이 발생한 초여름부터 한 겨울이 될 때까지 극심한 스트 레스를 겪으면서 한포진과 친구가 된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은 그 양상도 다양하고 원인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처리 과정도 매우 복잡하다. 특히 학생들과의 싸움이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확 대되었을 경우 상황은 굉장히 심각해진다. 그 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건이 굉장히 복잡하게 꼬여가기 시작하였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여 이런저런 절차를 진행하고 있던 오후에 피해 학생 아버지가 굉장히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피해학생 학부모의 입장에서 장시간 동안 항의를 하였지만, 담당교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안을 처리해야 했으 므로 현재 조사 중인 사건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이야기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가해자 편을 드는 겁니까?” 이제 사안 조사를 시작한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기에 중립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는 데, 다짜고짜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냐고 또 다른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전화상으로 목소 리만 들어도 극도로 흥분한 상황임이 느껴질 정도로 시종일관 공격적인 말투로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어야 했다. 매우 불쾌했지만 내 감정을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다. 다행인지 다음 시간 종이 쳤고 전화를 담당 부장 선생님께로 넘기고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하는 내내 그 학부모의 항의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고, 그 수업을 굉장히 망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기 위해 교무실로 올라왔는데, 오후의 그 학 부모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교무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선생이면 이래도 되는 거야?” “네?” “선생이면 너 맘대로 전화를 마음대로 끊어도 되는 거냐고.” 알고 보니 오후에 나와 1시간가량 통화를 하고도 화가 삭혀지지 않은 학부모가 부장 선생님을 붙잡고 또 1시간을 넘게 통화를 했던 것이다. 흥분한 상태에서 나에게 했던 얘기를 포함해서 동 일한 얘기만 반복하는 학부모의 일방적 이야기에 부장 선생님은 더 할 얘기가 없으면 통화를 종 료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전달하였고, 서로 합의하에 통화를 종료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학부모는 그 길로 학교를 찾아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 생활을 10년 가까이했기에 웬만한 일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때였는데, 면전에 대고 ‘선생’ 이라는 호칭과 함께 반말로 쏘아붙이는 항의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록 한 글자 차 이이지만 ‘님’자를 떼고 ‘선생’이라고만 불리는 것에 선생님이라는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 렸다. 그리고 교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부장 선생님은 학부모의 항의에 더 마음이 상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답답해하면서도 상당히 절제된 단어들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학교에 들어앉아만 있으면 선생이야? 어떻게 선생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가 있어!” “아버님, 고정하시고요.” “내가 왜 너 아버님이야? 귀한 자식 학교에 보내놨으면 학교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고.” 학생의 아버지는 시종일관 우리를 선생이라 부르며 반말 투의 공격적인 언행을 이어갔지만, 나 와 부장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상대방에게 제대로 된 항변을 하지 못했다. ‘아버님의 아이가 귀한 자식인 것처럼, 저도 저희 부모님께 귀한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내 머릿속 을 맴도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흥분한 상대방과 대거리를 벌였을 때 이후에 우리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흥분한 아버지와 달리 상대적으로 얼굴을 덜 붉 힌 어머니를 복도로 모시고 나와 이후 처리과정에 대해 자초지종을 말씀드렸고, 어머니의 도움 을 받아 아버지의 화를 누그러뜨리게 한 후 겨우 상황을 종료시켰다. “나이도 비슷한데 서로 반말로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악수하고 화해하시죠. 잘 처리해줄거라 믿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알고 보니 학생의 아버지와 부장 선생님은 비슷한 연배였고, 그렇게 흥분하시던 분이 결국에는 부장 선생님과 악수를 하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 이셨지만, 이미 마음의 생채기가 깊게 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시간이 흐 를수록 사안 처리과정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자 결국 상급기관에 여러 번 민원을 제기 하였고 상급기관에서 학교로 감사가 나왔다. 감사관이 학교로 수차례 내려와 모든 진행 상황, 관련 문서, 하다못해 학부모와 나눴던 대화 내용, 문맥적 의미까 지 샅샅이 조사를 하였다. 어떤 문맥적 의미로 질문을 했는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대답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감 사관의 요구에 나는 범죄자가 된 것처럼 몇 달 전 대화까지 생각 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상급기관의 감사가 진행되는 상황 에서도 그 아버지는 수도 없이 학교를 찾아와 교무실 앞에서 부 장 선생님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늘 대화가 진행되면 우리 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야 했다. 생채기가 생긴 마 음에 또다시 상처가 생기더라도, 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교사는 그래야 했다.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은 그래야 했다. 어 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참고 있어야 했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어떠한 항변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내뱉는 모든 단어들의 문맥적 의미까지 감사관 앞에서 증명해야 했기에, 어떤 말을 하든지 세세한 행간의 의미까지 분명히 기억해야만 했다.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던 나는 수업이 끝 나고 올 때마다 그 아버지가 교무실 앞을 지켜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4층 에 올라오자마자 멀리 보이는 교무실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한 다음에야 발걸 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런 게 환각이구나 싶었다. 이런 굴레는 퇴근 이후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일주일에 수차례씩 전화가 왔다. 몇 달 동안 최근 통화목록 제일 윗줄을 그 학부모가 차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얼굴을 맞닥뜨리고 얘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최소 1시간 이상이었다. 그래도 학생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공격적인 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울먹이며 하소연을 하는 것을 매일같이 들어야만 했다. 나는 상대방의 화와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모든 것을 듣고만 있어야 했고, 늘 긍정적인 대답 을 해야 했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퇴로가 막힌 채로 동물원 우리 안을 맴돌 수밖 에 없는 원숭이처럼 아무런 희망 없이 상처만 점점 깊어져 갔다. 출구가 없는 미로였다. 정말 미 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불안했다. 전화가 오지 않은 날도 꼭 전화가 올 것만 같아 불안했다. 이 전화를 못 받았다가는 또다시 상급기관 감사를 받고 치도곤을 당할 것 같아 휴대폰을 손에서 놓 을 수가 없었다. 추석 연휴 때에도 불안한 모습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어머 니는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스러워 하셨지만 나는 우리 어머니께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이후에도 끊임없이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해야만 했다. 다시 사안 처리과정을 조사하러 온 감사관에게 물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나 의 감정과 상처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냐고,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하소연을 하는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없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런 잘못이 없으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물론 아무런 잘못이 없었기에 벌을 받을 것도 없었지만, 이미 그때는 벌을 받는지 여부는 중요 하지 않았다. 수개월동안 진행된 과정 동안 나의 감정은 수백 번 짓밟혔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기기도 했으며, 늘 전화벨이 울릴 것만 같고, 늘 누군가가 교무실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상급기관에서 주는 벌보다 더 큰 형벌을 받고 있었다. 신경정신과에 가봐 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늘 강한 가장의 모습만 보였는데 자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남 편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붙잡고 울었다. 초여름에 시작된 사건이 겨울이 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결론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극적 으로 화해를 하였고, 상급기관의 감사 결과도 나와 부장 선생님 모두 사건 처리과정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단, 추가의견으로 추후에는 민원인과 대화를 할 때에 보다 공 손한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충고가 덧붙여졌다. 서글펐다. 상대방의 공격적 언사에도 감정을 안 으로만 삭이고 아무런 대거리를 하지 않은 것이 십수 번인데, 더욱더 예절을 지키고 더욱더 공손 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추후에는 더욱더 공손한 예절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사안은 마 무리가 되었다. 이미 수십 번 만나고 수십 번 통화를 한 그 학부모는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 고, 아픈 감정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여러 번 만난 피해학생도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슬펐다. 속으로 ‘이렇게 결론이 날 거면서 왜 그러셨냐고, 이미 가슴에 피멍이 들고, 나의 자존심은 종잇장처럼 구져졌는데 이제 와서 감사해하면 뭐하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허무했다. 슬프고 눈물이 났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지지가 않았다. 교사 심리치료센터와 같은 곳이 있는지 수소문해보 았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산적한 학교 일을 두고 찾아 가서 가슴에 피멍이 들어 온 과정을 털어놓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유일한 약은 시간이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때의 상처가 조금씩 덮어졌다. 하지만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상처가 또 다른 상처에 묻히는 것 이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고, 조그만 사건에도 그때의 상처가 거머리 같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그 사건은 나에게 떨칠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으며, 내 오른손 에는 수십 개의 수포가 늘 자리 잡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한포진과 친구가 되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내 손에 있는 한포진의 흔적처럼 다른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가슴에 상처를 여 러 개씩 안고 계셨고, 또 그것을 당연하듯 받아들이고 계셨다.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에 서 전국의 교사 1,6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교사 가운데 11.9%가 우울증 확실 단계, 28%가 우울증 주의 단계에 속할 정도로 많은 교사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 다. 이는 같은 연령대 일반인들의 우울증 비율보다 약 2배가량 높은 수치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교사들의 스트레스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도 동료 선생님이 정신 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휴직계를 제출했는데, 휴직 사유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우울 증이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당사자의 정신력을 탓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라는 조직이 감정노동에 내몰려 있는 구성원들의 아픔에 눈 감고 있는 것 같아 서 글펐다. 남의 문제 같지가 않아서 옆에 가서 슬쩍 한 마디 건넸다.“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선생님도 교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이잖아요.” 내가 건넨 한 마디에 그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또한 선생님의 눈물의 의미 를 알고 있기에, 꽤 오랜 시간동안 함께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우선 직장이나 조직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감정노동 종사자들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 다. 어쩔 수 없는 갑을 관계라 하더라도,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을’ 스스로 감정노동을 종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감정노동으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입은 구성원들을 위한 심리치료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상처도 질병과 상해로 인한 신체적 상 처만큼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 손의 한포진 흔적도 없어질 것이라 믿는다. 문득 얼마 전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중년 남성분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잠시 후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딸이 상담드릴 예정입니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장려
“나는 ...이다.” 최순애 전화 응대를 하면서 느껴졌던 감정의 차이에 대한 수기입니다.6년 동안 상담하면서 그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로서 상담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최근에 그 고민이 조금이나마 해결이 된 마음가짐을 적어 보았습니다. “행복을 나르는 서울교통공사 최순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열차가 덥다고 한다. 퇴근 시간에 많은 승객이 탔고 관제에서도 모든 열차 냉방 최대로 가동 중 이라고 한다. 당장 시원하게 하라고 한다. 열차가 느리다고 한다. 앞차가 바로 앞에 있다. 2호선 잠실역부터 신도림역까지 역마다 한 대 씩 있다. 만약 자동차처럼 추월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간격이 빽빽해서 할 수가 없다. 당장 지연 시간 회복하라고 한다. 내릴 때 물건을 놓고 왔다고 한다. 어느 열차인지도 모르고 어느 칸인지는 모른다. 모든 열차 모 든 칸을 다 보면 나온다고 한다. 당장 내놓으라고 한다. 열차 안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열차정보는 모르겠고 당장 와서 잡아가라고 한다. 실시 간으로 열차 다 확인해서 잡아가라고 한다. “이용에 불편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부서로 전달하여 조치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상담사 최순애는 말했다. 고객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에 치이다가 퇴근 후 얼 른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텐데, 덥고 느리고 이상한 사람이 시끄럽게 하니 얼마나 짜증나 고 화가 났을까. 얼른 부서로 전달해서 조금이나마 빨리 조치되었으면 좋겠다. 유실물도 역직원 이 가장 먼저 발견해서 고객이 꼭 찾았으면 좋겠다. 지극히 평범한, 서른 살의 사람 최순애는 생각했다. 더운 열차에 지금 드라이아이스를 갖다 주면 해결이 되는 걸까? 열차는 빽빽하게 밀려있는 데 가서 밀어 보면 빨리 갈 수 있는 건가? 열차 탑승할 때 다 혈중 알코올농도 검사해서 0.03%면 태우지 말고 돌려보 내면 되는 건가? 더운 건 당연한 거고 시간표는 못 지킬 수 있는 거다. 유실물도 못 찾을 수 있고 열차에 이상한 사람도 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지하철을 많이 타봤지만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 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당장, 당장 해결하라고만 하는 걸까. 과연 방법을 알고 는 있는 걸까? 한 명의 고객과 통화하는 3분의 시간동안 사람이었다가, 고객이었다가 수십 번씩 바뀐다. 머리 로는 상담사였다가 마음으로는 사람이 된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될 것 같다. “내가 그 쪽한테 화내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봐요. 어릴 때 공부 못했죠? 그러니까 거 기서 나한테 욕먹고 있는 거예요. 좀 똑똑했어봐. 진작 다른데 가서 폼 나게 일하지.” 상담사 최순애는 생각했다. 인바운드 고객센터만 6년째인데 한 번도 상담사라는 직업이 창피 한 적이 없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 말로만 사람을 설득하고 불만을 케어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입 사원들이 3개월을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이 태반일까. 다만 고객은 열차 이용하며 화나는 게 있으니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분명 끊고 나면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 거 다. 그리고 최대한 달래주기 위한 내 노력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 최순애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아는 건지. 고객이 지금 말하는 게 욕이고 폭언인 걸 알 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은 전화로 이렇게 민원 제기하는 악성고객이란 걸 알고 있는 건지. 한편 으로는 후회도 했다. 동료도 다 관두었지만 묵묵히 잘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정말 상담사는 이거 밖에 안 되는 직업인걸까? 상담사가 창피한 적은 없었지만 쉬 운 일이 아닌데 왜 그걸 몰라주는 걸까? 정말 시작부터 잘못된 걸까? 차라리 직설적인 욕설이 낫 다고 생각했다. 상담사 자체에 대한 비하는 6년의 시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 같아 마 음이 불편하고 쓸쓸해졌다. “네, 고객님. 저에게 화내는 게 아닌 것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저도 고객님께 직접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불쾌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으나 상담사 자체를 비하하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상담사 최순애와 사람 최순애는 이 정도 선으로 타협했지만 둘 다 상처받았다. 분명 이 고객은 새로운 하루를 맞으면서 다 잊어버렸을 거다. 그렇지만 마음 어디엔가 저 몇 마디는 떠돌아다니 고 있다. 그러다가 불현 듯 갑자기 나타나서 상담사 최순애와 사람 최순애가 상처를 곱씹게 만든다. “퇴근하고 6호선 타고 오는데 열차 안이 너무 춥더라. 이거 어디로 얘기해야해?” “칸 번호 문자 보내거나 전화하면 되긴 한데 그렇다고 바로 안 될 수도 있어. 그냥 겉옷 하나 들 고 다녀.” 상담사 최순애는 알고 있다. 다른 호선에 비해 6호선이 혼잡도가 낮아 시원한 편이라는 걸. 그 리고 사람 최순애도 알고 있다. 춥다고 민원을 넣는다고 해도 조치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걸 말이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엄마는 어르신들을 직접 부축하며 다니다보니 일할 때 땀 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하철을 타면 한기가 들어서 너무 춥다고 한다. 겉옷을 두 벌이나 가지고 다니는데 말이다. 결국 엄마는 감기에 걸렸고 며칠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다. 지 하철 내 온도를 모든 승객이 만족하게끔 맞출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원망스러웠 다. 정말 누구의 말처럼 온도하나 조절 못하는 걸까. 겉옷 두 벌을 들고 다녀도 감기 걸리는데 도 대체 몇 개를 들고 다니라는 걸까. 지금의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평범한 서른 살도 아니다. 우리 엄마의 딸, 최순애다. “어디야. 왜 이렇게 늦어.” “지금 열차 안인데 사고 있나봐. 열차가 움직이질 않아.” “네가 거기 고객센터 직원인데 왜 인지 몰라?” “바로는 알기 힘들지. 미안해. 너희 먼저 놀고 있어.” 매일 일에 치어 살다보니 친구를 만나는 것도 힘들다. 오랜만 에 만나러 가는데 열차가 중간에 멈춰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아니,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 왜 지연 되는지 방송이 나오기는 한데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일하 고 있는 동료에게 물어보고 싶을 만큼 간절했지만 어차피 가장 바쁠 것을 알기에 참았다. 실제로 는 10분밖에 안 되었는데 마음은 10년이 흐른 것 같았다. 1호선부터 8호선까지 지연도 많고 크고 작은 고장도 있지만 막상 고객 입장이 되니 초조해졌 다. 지금의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평범한 고객이 되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러 사람이 살아. 죽고 싶은 나와 살고 싶은 내가 있어. 포기하고 싶은 나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내가 매일매일 싸우면서 살아간다고.”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킬미힐미의 대사다. 어린 시절 학대의 상처로 인격이 조각난 남 자 주인공을 설득하기 위해 여자 주인공이 했던 말이다. 그 상처와 인격을 하나씩 치유하면서 극 은 진행되고 모든 인격은 결국 한 명이었음을 보여준다. 상담사로서, 평범한 서른 살의 사람으로 서, 고객으로서의 나를 분리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상처받을 게 아니다. 상담사이자 평범한 사 람이면서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이 되는 그저 나 한명의 최순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안에 서 서로간의 다툼과 타협은 있겠지만 이것도 결국 나인 것이다. 지금은 감정노동이 전문 분야의 개념으로 잡혔고 감정노동을 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많 은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노동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상담사들 은 3분의 시간동안 내면의 수많은 내가 서로 싸우면서 응대하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고객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준다면 오로지 한 명의 내가 되면서 위로와 치유를 받게 된다. 그게 아닌 폭언으로 끝나면 계속해서 수많은 내가 싸우면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각을 재며 마음을 조각낸다. 결국 그래도 한 명의 나니까 인정하고 수긍하면 되지만 그러 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체념과 포기를 해야 한다. 상담사는 일부 고객이 말하는 것처럼 쉬운 직업이 절대 아니다. 어느 고객센터나 마찬가지지만 상담 부서는 신입직원의 이탈이 많다. 전화로 안내만 잘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들어왔 다가 실제로 해보니 어렵다 느끼고 포기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6개월, 1년. 그 이상의 시간동 안 고객을 상대하는 우리 상담사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내면의 내 가 서로 싸우면서 타협하기보다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일했으면 좋겠다. 그럼 상담사의 나와 평 범한 사람의 나, 그 외 다른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장려
“차 좀 빼주세요.” 권현우 20살 군 입대를 위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주유소 주유원으로 일했습니다.추운 겨울의 어느 날, 주유소 출구에 차를 대고 있는 남성에게출구에 차를 대면 주유를 마친 차들이 나갈 수 없다고 말을 하자 그 남성이 저의 왼쪽 뺨을 때렸습니다.‘건방진 알바 새끼’가 손님에게 명령을 한다고 하며.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당시에는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채 생기기도 전이었고,저는 주유소 사장님이 해주신 ‘공부해서 성공하면 이런 일 안 당한다’는 말로 위로를 부끄럽게도 받았습니다.15년 동안 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억울함과 슬픔을 글로 풀었습니다.지금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잘못한 것은 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저에게,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우리에게.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 울지 말자고.함께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해서 더욱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차 좀 빼주세요. 출구에 차를 대시면 차들이 못 나가잖아요,” 추운 겨울의 주유소. 기름 총을 주유기에 다시 꽂고 금방 주유를 마친 손님, 아니 손님의 차에 “안녕히 가세요.”를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손님이 내가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을까. 굳게 닫힌 창문 안은 보이지 않았다. 추워서 그랬을 것이다. 추워서 창문을 다시 빨리 올렸을 것이다. 그리 고 나는 앞선 문장을 말하며 굳게 닫힌 창문의 차 앞쪽으로 달려 나갔다. 도로와 주유소 사이에 인도가 있었고, 그 인도는 주유소에 들락날락거리는 차들을 위해 낮춰져 있었다. 그리고 낮아진 인도와 도로에는 ‘주유소 출구’라 적힌 흰 글씨가 크게 보였다. 저 글씨가 보이지 않았을 리 없고, 이곳이 주유소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흰 색 해치백 자동차가 주유소 출구에 차를 대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유를 마친 차가 주유소 출구 앞의 흰 자동차 탓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출구 였고 주유를 마친 차는 다시 도로로 나가야했다. “차 좀 빼주세요. 출구에 차를 대시면 차들이 못 나가잖아요.” 나는 외쳐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가기를 기다리는 차의 손님에게는 ‘나는 지금 당신이 이 주유 소를 나가도록 하는데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고 그리고 또 주유소 출구를 막은 저 흰 차가 혹시 내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아 바로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줄지도 모른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이어 발생한 일, 사건, 사고, 실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어 발생한 그 어떤 일 덕분에 주유를 마친 차는 나의 노 력을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었고, 주유소 출구를 막았던 흰 차는 결국 그 자리에서 30분간 서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흰 차의 차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차를 빼 달라 말하는 나 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차는 여전히 주유소 출구를 막아놓은 채였고, 남성은 빠르게 나에 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금방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어디서 건방지게 주유소 알바가 손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이래라 저래라였을 것이다.‘이래라’라는 말 뒤에는 보통 ‘저래라’라는 말이 붙기 마련이니까. ‘저래라’였을 것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래라’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왼쪽 뺨 과 귀를 걸친 부위, 그러니까 정확하게 내 귓방망이를 남성이 자신의 오른 손바닥으로 때려 날 렸기 때문이었다. ‘퍽!’ 짝이 아닌, 퍽. 순간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성은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계속 말하는 듯했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욕이었을 것이고, 욕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코 칭찬의 말이거나 사과의 언사는 아니었을 테니까. 내가 따귀를 맞는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아니면 주유소 사장님이 항상 따뜻한 사무실 안에서 지켜보시던 CCTV에 내가 휘청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일까. 사장님께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 습이 보였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사람을 때려요!” 사장님이 남성에게 따지듯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내가 왜 뺨을 맞아 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만 있었다. 내가 어떤 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저 남자는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 이유를 내 뺨의 얼얼함을 느끼면서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 로 그때, 내가 뺨을 맞은 이유가 들렸다. “건방지게 알바 새끼가 차를 빼라 마라고 말을 해! 씨발, 건방진 새끼가!” 그렇다. 내가 건방진 알바 새끼였기 때문에 맞은 것이다. 아닌가. 차를 빼라고 말을 했기 때문인 가. 차를 빼라 마라고 하는 이야기는, 알바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파트 주차장에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이 차를 대면 관리 아저씨께서 오셔서 차를 빼라 하실 것이고, 식당 주 차장에 식당 손님이 아닌 사람이 차를 대면 차를 빼라고 식당 주인이 나와서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경비 아저씨나 식당 주인도 뺨을 맞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건방진 알바’였기 때문에 뺨을 맞은 게 확실했다. 경찰이 왔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렸지만, 생업에 계신 부모님 대신 가까운 곳에 서 사업을 하고 있으신 작은아버지께서 부랴부랴 주유소로 찾아오셨다. 경찰은 내게 경위를 물 었다. “왜 건방진 알바 새끼가 되었습니까?”라고는 당연히 묻지 않았고 내가 무슨 말을 저 숭고 한 남성 고객님께 했는지 물었다. “차를 빼라고 했다, 주유소 출구라 차를 대면 다른 차들이 못 나간다고 했다.”라고 말하며 나는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작은아버지께서 울지 말라고 말을 계속 내게 해주셨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더 눈물이 났다. 경찰은 나와 남성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전화번호를 묻고 떠났다. 함께 경찰서를 동행 하지도, 남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묻지 않았다. 폭행죄라는 죄가 있는 걸로 아는데 아무도 폭 행죄로 저 남성 고객님을 고소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렇게 경찰이 떠나고, 주유소 사장님도 남성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고 메모를 해 두는 듯 보였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셔야 하는 삼촌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위로의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울 지 말고 이제 주유소 알바 그만해.”라고 하시며. 나는 계속 울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잠시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나 대신 기름을 넣으러 온 손님들을 응대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시 사장님이 가게로 돌아 오셨고, 나는 그때까지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건방진 알바 새끼가 아닐 수 있 는지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사장님은 이제 그만 울라 하셨다. 그리고 당시 군 입대를 앞둔 20살 대학생이던 나에게 이런 주옥같은 말을 하셨다. “어른들이 왜 공부해서 성공하라고 하는지 알겠지? 공부해서 높은 자리 올라가면 오늘 네가 당 한 이런 일 안당하고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나중에 군대 갔다 와서 대학교 복학하면 공부 열심히 해. 알겠지?” 위로였을까. 위로였다. 군대를 가기 전에 잠시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 싶어 하고 있는 주유소 알바 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서울에서 대학교를 한 학기 다니고 군대를 가 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있었을 뿐이고 용돈도 벌고 경험도 될 것이라 생각했 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장님의 저 말에 위로를 부끄럽게도 받았다. 공부를 해 서 성공을 하리라. 그래서 건방진 알바 새끼로 살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감정노동 따위의 말은 없던 시절이다. 2004년, 시급 2700원. 한 시간 2700 원어치 일을 하면 짬뽕 4000원짜리도 사먹을 수 없었던 시절에 ‘감정노동’이 라는 말은 주유소의 유증기와 같았다. 뭔가 매캐하고 몸에 안 좋은 느낌이 드 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형태의 것인지 모르겠는 어떤 것. 이런 유증기와 같이 나쁜 것들이 단지 나 혼자만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어떤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건방진’ 사람이 되어 있거나 ‘하찮은’ 사람이 되어 있거나 또 때 론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유증기는 나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생 소한 단어는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유증기를 맡으면서 살고 있는 듯하다. ‘공부를 못해서’, ‘몸이 아파서’, ‘당장의 가난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결과 로 얻은 직업에서 유증기를 맡을 이유는 없다. 당연히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 어떤 누구도 일을 하면서 뺨을 맞을 이유는 없다. 당연히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숨겨 가며, 웃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이유는 없다. 이 이야기를 하는데 15년이 흘렀다. 15년 동안 내 왼쪽 뺨은 다행히 한 번도 다시 맞은 적은 없 고, 그건 오른쪽 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를 반드시 때려야만 그 사람이 아픈 것은 아니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은 많았다. 그래도 지킬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내 자신이 강해져서도, 결코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기 때문 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정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업무의 질과 양에 무관한 감정들을 덧씌워야만 했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감정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닌, 감정노동자들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 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5년 동안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나는 건방진 알바 새끼가 아니었다. 나는 건방지지도 않고, 알바 새끼도 아닌, 주유소 주유원 이었다. 무엇보다 당연히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였고, 존재이고, 존 재일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과거의 우리에게, 현재의 우리에게, 미래의 우리에게도 마음 깊이 두 손 잡으며, “다시는 울지 말자.”고 도 말해주고 싶다. 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부문 입선
“감정의 완물치지(玩物致知)”류호진 늦깎이 신규교사로 임용되어 고등학교 남자반의 담임을 맡았습니다.그리고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첫째, 학교는 전문적 지식의 전수보다 기본적인 생활지도가 더 중요했다는 것.둘째, 학생들은 일과 이후에는 교실을 나서지만,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상담이 있었습니다.바로 학부모님들이었습니다. 학부모님을 상대하며 겪은 에피소드와 그 성장기입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날이었을까, 돌 지난 아기를 재우고 거실 소파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데, 드르륵-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스승의 날에 생각나 연락드려요.」 작년 반장어머니다. 작년- 그 치열했던 기억. 문득 이 봄날, 기억을 걷는다. 임용시험에 몇 차례 고비를 마시고, 늦깎이 신규교사로 임용되어 고등학교 남자반의 담임을 맡 았다. 그리고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학교는 전문적 지식의 전수보다 기본적인 생활지도가 더 중요했다는 것. 둘째, 대입에는 정말 수십수백 가지의 복잡한 전형들이 있다는 것. 그저 수능만 바라보고 대학교에 입학했던 나의 세대와는 달리, 지금 고등학생들은 학생부 종합전형, 논술·적성고사 등 다양한 입시의 수를 계산해야했고, 이 중요한 때의 담임교사로서 나는 낮에는 쉴 틈 없는 상담과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어야 했고 퇴근 후에도 각종 대입 연수를 찾아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다. 비록 워라벨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N수 끝에 교사의 꿈을 이룬 만 큼 네모난 교실 속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했기에, 배우고 가르치며 나는 교학상장을 느꼈다. 특히 나를 바라보고 수많은 학생들이 나로 인해 동요되지 않게 하기 위해 교실에서만큼은 슬 프거나 우울함 등 부정적인 내 감정을 절제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매우 중요한 것을 간과 했다는 것에 때늦은 각인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일과 이후에는 교실을 나서지만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상담이 있었다. 바로 학부모님들이었다. 학생들과 상담하고, 자세한 결과를 알 려주어도 밤늦은 학원 등에 부모님과 소통이 단절된 학생들이 많았기에, 부모님들은 자녀의 학 교생활을 상당히 궁금해하셨고, 그로 인해 퇴근 이후에도 학부모님들의 연락은 끊임이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아기와 키즈카페에서 놀다가도 걸려오는 상담 전화와 문자에 난 여유의 흐름을 끊겨야 했다. 그래도 학부모님이 미안하지 않게끔 최대한 밝게 감정을 숨 기며 응대했다. 하루는 담임교사들끼리 모여 회식을 하던 중, 요즘 학부모님들의 퇴근 후 연락이 너무 잦다는 공통적인 불만이 나왔다. 그 자리에 계 시던 연로한 부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사는 사실 서비스직이라네. 슬픈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 도 그걸 숨겨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바로 참교사야.” 우리는 선배의 말씀을 아로새기며, 잠시나마 현실을 탓했던 나태함을 성찰했다. 그렇게 주야를 불문한 상담과 첨삭이 이루어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에는 교사는 분명 신나게 놀겠지- 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어이없을 정도로 연이은 보충수업 및 방학 중 자율학습 감독, 그리고 2학기 수시모집을 앞둔 입시상담으로 방학임에도 매일 출근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 주간의 휴가를 신청하였다. 그동안의 피로를 보상받고자 와이프와 어린 아기, 이렇 게 우리 가족 셋이 동남아 휴양지로 여행을 떠났다. 수영장을 바라보며 망고주스를 마시며 전원 이 꺼진 휴대폰의 여백의 미를 만끽하고 꿈같은 한주가 흘렀다. 시간은 어찌나 빠른지, 다시 TV 속 드라마에서 벗어나 현실로 회귀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핸 드폰을 키니 드르릉- 드르릉- 끊임없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토해냈다. 공항버스 속에서도 밀려있는 수많은 상담과 휴대폰 작은 화면 속 자소서 첨삭들을 해주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 암만 피곤해도 이대로 자기엔 여행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내가 하는 유일한 SNS인 페이스북에 가족여행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반장 어머니의 카톡이 왔다. 「선생님, ○○맘이에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생들이 지금 대입 때문에 방학 때 쉬지도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SNS에 휴가 사진을 올린다면 학생들이 사기가 꺾이지 않을 까요? 오지랖이라 여기실수는 있지만,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삭제 부탁드립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위와 같은 메시지가 왔다. 그래, 학부모님 입장에서 그럴 수 있지- 황급히 올린 글을 삭제하는데 문득, 아니 어떻게 내가 페이스북에 글 올린걸 어떻게 알았지? 순간 감정 이 불쾌해졌다. 내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것도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내 친구들만 볼 수 있게 올린 사진인데- 그리고 불건전한 것도 아닌 휴양지에서 먹은 음식을 올린 것뿐인데- 아 마도 나와 페이스북 친구인 우리 반 아이의 계정을 통해 보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삭제하라는 것까진... 카톡의 내용은 손을 붙잡듯 내 심장을 부여잡았다. 답답했 지만 난 지우지 않기로 했다. 수험생들의 담임교사는 즐거움이란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되는 걸까, 이것은 사생활 침해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개학날이었다. 개학식을 하고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로 왔는데 내 자리로 인터폰이 왔다. 교감 선생님이시다. 무슨 일일까. “류호진 선생님, 잠깐 뵐까요?” 본부교무실로 찾아간 내게 교감 선생님이 느릿느릿 말씀하셨다. “류 선생님, 학부모님한테 민원이 왔어요. 아무리 개인 SNS라도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글을 자제해달라고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난 해명을 해야 했다. “아니 교감 선생님, 저는 그런 의도로 한 게 아니라-” “류호진 선생님, 물론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학교평가 기간이에요. 그 글은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교감 선생님 단호한 말씀에 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우겠다는 마지못한 답변을 드리고 피 곤하다 못해 지릿한 몸을 이끌고 교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처음으로 교직에 대한 회의감 이 들었다. 내가 뭐하는 거지, 내 개인적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 이렇게 난 가면을 쓰고 살 아야만 하는가? 갑자기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 대체 이 주기적은 파열음은 뭘까. 귀를 기울이는데, 그것은 바로 내 심장소리였다. 심장소리가 귀에 선명해질 정도로 크게 들려오고,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가빠져왔다. 바닥을 뚫고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빈혈기가 내 전신을 휘돌았다. 옆 반 담임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류선생, 안색이 창백한데, 괜찮아?” 어느 순간부턴 의식하지 않고는 숨조차 내쉴 수 없었고, 바로잡으려 할수록 내 몸의 자율신경 은 갈피를 잃었다. 교무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고, 때 아닌 평일 낮에 구급차를 타곤 응급실로 향 했다. 다채로운 검사를 받고 한참을 자고 일어났을까, 내 손을 잡고 기도하는 아내가 보였다. 그 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내게 물었다. “류호진씨, 이제 좀 괜찮으세요?” “의사 선생님, 저 어떻게 된 건가요, 큰일인가요?” “큰일은 무슨- 다 정상이에요. 그나저나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스트레스라기 보단 일하고 애보느라..” “그쪽 같이 젊은 사람들도 요즘 과호흡 때문에 병원 많이 와요, 이건 병이 아냐, 굳이 말하자면 마음이 꽉 막혀 나는 질환이지. 어서 빨리 뚫어야해요.” 퇴원 후, 집에 돌아와 응급실에서 병간호하느라 지쳐 잠든 아내와 아기를 보니 문득 수만 모금 서글퍼졌다. 어쩌다 내 삶이 이리도 여윈 걸까. 담임교사로서의 책무, 그간 나도 모르게 지쳐왔 던 것일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바 꿀 차례다. 그동안 수동적인 답변을 해왔다면, 이제는 능동적인 교사가 돼야 한다. 이대로 가면 난 주 42시간 근무는커녕 학부모님에 대한 스트레스에 호흡조차 보장을 못할 듯 했다. 선배교사 에게 자문,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딩동 하고 휴대폰에 알림이 도착했다. 어 린이집에 간 아기의 하루를 알려주는 알림장이었다. ‘그래 이거다..!’ 학부모님들이 퇴근 후에도, 방학 중에도, 나를 찾고 우려하는 이유는 바로 적극적인 소통의 부 재라 생각했다. 난 그동안 학부모님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답변에만 응하는 자동응답기같 은 교사였던 것이다. 학부모님 및 학생들을 위해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몸은 어른 같지만, 마음은 아이 같은 고 등학교 남학생들의 근황 및 활동사진을 매일매일 올리기로 했다. 유용한 면접 자료 등은 묻기 전 에 공지를 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네이버 밴드와 단체 채팅방도 오픈. 그리고 내가 먼저 물었다. 「자제분들은 오늘 이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답니다, 부모님들은 어떠셨어요?」 그러기를 한 달이 지났다. 이젠 신기하리만큼 개인적인 연락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쓴 게 시글에 학부모님들의 답글을 보는 재미에 글 올릴 때 유쾌하게 설레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매일매일 하루의 감정을 글을 통해 표현하고, 중요한 입시정보 등을 담은 글을 올리다보니, 내게 휴 가사진을 지워달라던 그 어머님도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방법은 다를지언정 자제분을 사랑하 는 마음은 나와 같으니 말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이 있다. 세상 속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여 자기의 논리를 확고하게 한 다는 뜻이며, 내 감정을 숨긴 채 입시를 공부하고 학부모님들에게 수동적 답변을 하던 기존의 태 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감정노동자로서의 교사, 학부모님들과의 소통창구 로서의 교사란 입장을 한 단계 더 나아가, 행동을 통해 가치를 완성한다는 뜻인 ‘완물치지(玩物致 知)’에 이를 차례였다. 과호흡이라는 절벽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역 설적인 깨달음에 감사하며, 상대의 감정을 알고 먼저 손을 내밀어, 내 감정 역시 보여주는 능동 적인 교사가 된다면 ‘완물치지(玩物致知)’에 도달할 것이라 믿는다.감정노동, 우리들의 이야기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집※ 출처를 밝히지 않고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내용을 무단전재 또는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21.06.21